백종옥·미술생태연구소장

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2000년대 초 기념조형물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느 날 베벨광장 중앙의 지하에 설치된 기념조형물을 본 것이 계기였다. 1933년 5월 10일 밤 유대인 작가와 학자들 그리고 나치를 비판한 비유대인 저자들의 책 2만여 권이 불태워졌던 자리다. 나치즘에 물든 수천 명의 독일 대학생이 분서 행위를 주도했고 수만의 군중이 이를 지켜보았다. 그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상기시키기 위해 1994~1995년 이스라엘 출신 예술가 미하 울만(Ullman)이 기념조형물 '도서관'을 설치했다. 그는 책들의 무덤처럼 땅을 파냈고, 불타 사라진 책의 부재를 강조하기 위해 텅 빈 책장만 있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늘 보았던 높이 솟은 기념탑이나 진부한 동상과 달리 도시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도 예술성이 높은 조형물을 보면서 감동과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베를린 곳곳에 있는 기념조형물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았다. 책으로 태어나기까지 약 16년이 걸렸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반비)은 베를린의 주요 기념조형물 10곳을 자세히 조명한 책이다. 앞에서 말한 지하 도서관 외에도 '노이에바헤' '홀로코스트 추모비' '17번 선로' '베를린장벽 추모공원' 등을 따라가다 보면 1·2차 세계대전과 동서 분단을 경험한 베를린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게 되고, 각각의 조형물이 역사를 예술적으로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공감하게 될 것이다. 기념조형물은 역사의 교훈뿐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남북이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고, 한국 사회가 굴곡진 과거사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이 시기에 반드시 참고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