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11시간 10분. 헌정 사상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첫 검찰 조사에 걸린 시간이다. 11일 검찰에 출두한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은 까마득한 사법연수원 후배 검사들과 마주앉아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피의자 신문을 이날 오전 9시 30분 시작해 오후 8시 40분쯤 마쳤다. 재조사가 필요한 만큼 심야까지 조사를 이어가지 않고 조기에 끝낸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하루에 조사를 끝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날 조사는 서울중앙지검 1522호 조사실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운주당(運籌堂)'이라는 이름의 직원 휴게실이었는데, 최근에 조사실로 개조했다. 검찰은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첫 조사인 만큼 "예의를 갖췄다"고 했다. 검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원장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사에 앞서서는 수사팀장인 한동훈 3차장검사가 조사 취지와 방식 등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특정 성향의 법관 명단을 관리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조사는 단성한(45·32기), 박주성(41·32기) 부부장검사가 맡았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최정숙(52·23기) 변호사 등 2명이 입회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혐의 내용에 대해 대부분 부인하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혹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한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나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했다. 앞서 박병대(62)·고영한(64) 전 대법관도 검찰 조사에서 '실무자가 알아서 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 출두하기 전인 이날 오전 9시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으로서,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자기들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그 말을 믿는다"며 "나중에라도 그 사람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지면 그 역시 제 책임이고 제가 안고 가겠다"고 했다. '부당한 인사개입, 재판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부당한 지시는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