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 9일(현지 시각) 이혼을 발표했다.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4개월 간 취재한 내용을 기사화 하겠다고 베이조스에게 통보한 지 48시간 뒤에 벌어진 일이다. 베이조스는 트위터를 통해 "제 삶의 변화를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다.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은 이미 알고 있듯이, 저희 부부는 오랜 사랑과 실험적인 별거 끝에 이혼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넉 달 동안이나 베이조스를 따라다닌 이유는 다름 아닌 불륜이었다. 상대는 폭스뉴스 TV 전 앵커 출신인 로렌 산체스다. 그는 할리우드의 거물인 패트릭 화이트셀의 부인이기도 하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10일 자그마치 지면 11장 분량에 달하는 불륜 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전 세계의 관심은 곧장 베이조스의 재산 분할에 집중됐다. 아마존 소유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베이조스의 자산은 1372억달러다. 우리 돈으로 145조 8000억원에 이른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베이조스를 세계 최고 부호 1위로 선정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왜 베이조스의 뒤를 캐고 다녔는지에 주목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을 쫓아다니며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매체다. 베이조스와 같은 정보기술(IT) 대기업의 수장은 이들의 평소 타깃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2019년 1월 10일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불륜 정황이 담긴 사진을 수십장 공개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MSNBC 등은 내셔널 인콰이어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유착 관계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모회사인 아메리칸 미디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이자 잘 알려진 지지자 데이비드 페커가 대표를 맡고 있다. 페커는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트럼프 후보와 혼외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한 모델 이야기를 독점 보도할 권한을 사들인 뒤, 이를 보도하지 않아 트럼프 당시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베이조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적(敵) 중 한 명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 앞서 WP를 인수한 그는 30여명의 특별취재팀을 만들어 트럼프 당시 후보를 겨냥한 비판적 보도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마존의 세금·배송료 같은 문제를 놓고 트위터 설전(舌戰)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수시로 "WP는 아마존의 로비스트" "아마존이 WP를 인수한 것은 세금 회피를 위한 것"이라며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아마존을 포함한 거대 IT 기업들의 반(反)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WP 직원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는 "정말 긴 파업이 좋은 생각일 것 같다"며 일침을 놨다.

데이비드 페커(오른쪽) 아메리칸 미디어 대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페커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이미지 회복을 위해 베이조스를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매체의 신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자, 거물을 상대로 한 심층 취재에 나섰다는 것이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모회사 아메리칸 미디어의 ‘배신’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메리칸 미디어의 대표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인 페커는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의 성(性) 추문 무마 사건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검찰 처벌 면제 처분을 받았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지난해 4월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기사를 싣지 않고 있다.

다만 베이조스의 불륜 특종을 터트린 내셔널 인콰이어러 기자 중에는 딜런 하워드 편집국장도 포함돼 있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하워드 편집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혼외 자녀가 있다고 주장한 남성에게 ‘입막음용’ 3만달러를 지불하고 독점권을 구매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아메리칸 미디어 대표 페커와 마찬가지로 검찰에 협조하는 대가로 형사 기소는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