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한창이던 작년 10월 최인석(62) 울산지방법원장은 법원 내부 온라인망에 "법원은 검찰에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는 글을 실명(實名)으로 올렸다. 압수 수색 영장 청구를 남발하는 검찰과 이를 제대로 거르지 못하는 법원을 동시에 비판한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 과정을 공개 비판한 첫 법원장이었다. 법조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최근 사표를 던진 그를 지난 8일 울산지법 법원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정년(停年)을 3년 앞둔 지금이 그나마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는 시기"라며 "최근 법원 상황 때문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법원 내부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선 "믿을 수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제가 모시던 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선배 누구도 제 재판에 관여하려 한 적 없고, 주변 법관의 재판에 개입하려 했다는 걸 들은 적이 없다. 판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검찰이 '재판 거래'의 대표 사례로 보고 있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도 "(진실은) 좀 더 두고 봐야 아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 사건은 2013년 대법원에 다시 올라온 뒤 5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다가 지난해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은 2013년 말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불러 이 문제를 논의한 뒤 선고를 늦춰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최 법원장은 "외교 문제가 걸려 있는데 청와대는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느냐"며 "청와대가 법원 관련 사안에 대한 관심을 알리는 창구가 대외 업무를 하는 법원행정처다. (두 기관이 특정 사안을) 의논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행정처는 재판부가 아니다. '청와대가 행정처에 이런 말을 했다'는 얘기가 들려도 판사는 자기 생각대로 사건을 처리하면 그뿐"이라고 했다. 그는 "재판 거래 의혹을 사실상 검찰로 넘긴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정이 옳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할 말은 있지만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판사들이 그동안 검사 편향적으로 일을 많이 처리해왔다"며 압수 수색 영장 얘기를 꺼냈다. "검찰이 압수 수색을 가면 피의자 집 마누라 속옷 서랍까지 뒤지게 된다. 구속 영장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데 판사들이 가볍게 생각한 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엔 구속 수사가 많다. 대중이 피를 원한다고 판사가 따라가면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