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을 백지화했다. 그런데 이런 발표를 하는 유홍준 광화문시대위원회 자문위원 기자회견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유홍준 자문위원은 청와대 관저는 이전을 해야 한다면서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한다"고 했다. 야당 대변인 논평처럼 정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마침 그날은 중국이 인류 최초로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에 탐사선을 착륙시켰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미국이 보낸 무인 우주선은 태양계를 벗어나 새로운 천체를 탐사한다고 했다. 우주선이 달의 뒷면에 착륙하고 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뻗어나고 있는 마당에 우리 청와대에서 풍수지리 때문에 관저를 옮기기는 해야 한다는 공식 논의가 터져 나온 것이다.

유홍준 광화문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보안·비용·역사성을 종합 검토했다고 했다. 유홍준씨는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의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선 공약집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 청와대를 시민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문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런 공약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준비 마치는 대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 그동안 대통령 마음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공약 때는 ‘대체 부지’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없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던 2017년 5월부터 유홍준씨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백지화를 발표한 2019년 1월, 그 사이 1년8개월 동안 광화문 일대 스카이라인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 취임식 때는 영빈과 지을 자리, 헬기장 만들 자리, 이런 대책도 없이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약속했단 말인가. 그때는 헬기장 지을 자리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그런 자리가 땅속으로 꺼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허투루 공약을 했다는 말인가. 프랑스 파리 엘리제 거리에 있는 대통령궁,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이런 곳은 도심 한복판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가능했는가.

유홍준씨는 이런 말도 했다. "문 대통령도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호와 의전이라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건 무슨 말인가. 결국 유홍준씨는 "대체 부지가 없다"는 것은 표면적인 핑계일 뿐이고, 결국 ‘경호’와 ‘의전’ 때문이라고 실토를 한 셈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호와 의전을 새로 알게 됐다는 뉘앙스인데, 이것 역시 납득 불가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 수석을 역임했다. 대통령 되기 전부터 청와대 경호와 의전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런데 대통령을 하다 보니 경호와 의전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납득 불가다.

또 하나, 유홍준 씨는 노무현 정부 당시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문화재 전문가다. 이런 사람에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총책을 맡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유홍준씨가 실토한 것처럼, ‘경호’와 ‘의전’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핵심적 고려 사항이라면, 유홍준씨는 경험도 없고, 전문 지식도 없는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에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총체적인 검토 책임을 맡긴 것 자체가 납득 불가다.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든 것은 유홍준 자문위원이 다음에 말한 대목이다. 유 위원은 대통령 관저 이전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저 사용상의 불편한 점,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한다." 기자가 물었다. ‘풍수상 불길한 점의 근거가 무엇인가.’ 그러자 유 위원은 웃으면서 "수많은 근거가 있다"고 했다.

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집무실과 관저 이전에 가장 중요한 점이 ‘풍수지리’라고 믿기 때문에 문화재 전문가에게 이전 검토 총책임을 맡긴 것인가. 문 대통령도 풍수지리를 믿는가. 둘째 질문은, 유홍준씨가 대답한 풍수상의 수많은 근거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풍수도참 설에 따라서 청와대 터가 ‘길지(吉地)’가 아닌 ‘흉터’라고 보는 ‘수많은 근거’가 있다는 셈인데, 유홍준씨만 알고 있고, 국민은 모르는 무슨 내용이라고 있다는 뜻인가.

우리는 한국에 천년 넘게 이어져 온 ‘풍수도참’이나 ‘영발지리(靈發地理)’ 사상 체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풍수 학자들은 청와대 터가 산의 정기, 즉 ‘정맥’이 아니라 곁가지 맥, 즉 ‘편맥’이 내려오는 자리라는 해석을 많이 한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은 바위가 많은데, 풍수에서 바위는 '살기(殺氣)'로 본다는 것이다. 바위가 많으면 철분 같은 광물질이 많고, 철분이 많으면 기도발이 잘 들어서, 예배당이나 절집을 짓는 데는 좋지만, 보통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 한이 많은 후궁들의 거처와 임시 무덤이 지금 청와대 터에 자리했다고 보는 풍수가도 있다. 그런 원혼이 서린 자리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문 대통령과 경남고등학교 동기생인 건축가 승효상 씨는 청와대 내부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관저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문제가 있어 옮겨야 한다." 또 청와대 터는 음의 기운, 즉 ‘음기(陰氣)’가 강해서 남자 대통령에게는 맞지 않고, 여자 대통령에게는 좋은 장소라는 생각을 가진 풍수가들도 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감방에 가는 것을 보고 난 뒤 이런 얘기는 쑥 들어갔다고도 한다.

이런 얘기는 여기까지다. 대통령이 풍수지리를 믿고 안 믿고는 사실은 관심 없다. 그러나 청와대 산하 광화문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이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발표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풍수지리를 언급했다면, 이에 대한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 청와대 정책에는 풍수지리가 중요한 고려 사항인가 아닌가. 대통령과 청와대는 ‘청와대 터가 한이 서렸다든지’, ‘음기가 세다든지’, ‘살기가 내려온다든지’, 이런 얘기를 비과학적인 ‘설(說)’에 불과하고, 어디까지나 미신일 뿐이라고 일축해야 옳지 않겠는가.

우리 조상들의 풍수지리 사상은 ‘배산임수(背山臨水)’,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흐르는 그런 장소, 즉 주거지로 최적 장소를 물색하는 ‘생활의 지혜’로 봐야 옳다. 대통령과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수단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연실색할 일인 것이다.

우리 역대 대통령들이 총을 맞거나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거나 감방에 가 있거나 나중에 바위에서 투신하거나 했던 것이 모두 청와대 터 때문이란 말인가. 지나친 ‘대통령 권력 집중’이라는 대통령제의 시스템과 제도에 허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에 유례없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이뤄낸 것은 혹시 청와대 터가 너무나 기가 막힌 명당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