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축하하면서도 "장벽 없이 국경안보 없어" 셧다운 장기화 예고
발언 끝나자마자 대변인과 퇴장…질문 안 받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각) 예고없이 백악관 브리핑룸에 등장해 야당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멕시코 국경장벽 문제를 언급했다. 이날 116대 의회 개원식에서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의원이 신임 하원의장으로 선출되자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13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싸고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펠로시 의원 등 여야 지도부 4명과 회동한 자리에서도 "국경장벽 건설 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예산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6억달러(약 6조3000억원) 규모의 국경장벽 건설 비용을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현존하는 국경을 유지·보수하는 데에만 13억달러를 배치한다는 입장이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후 4시 7분쯤 트위터를 통해 "4시 10분에 브리핑이 있을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이후 4시 30분쯤 모습을 드러낸 샌더스 대변인은 "짧은 공지에도 참석해줘서 고맙다. 2019년을 조금 색다르게 시작하기 위해 특별 손님을 모시려고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소개했다. ABC뉴스는 백악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이처럼 갑자기 브리핑이 조율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기 때문"이라며 "촉박한 공지에 참석하지 못한 기자가 더 많았다"고 전했다.
소개와 함께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펠로시 의원의 하원의장 선출을 축하했다. 그는 "아주, 아주 훌륭한 성과"라며 "바라건대 우리가 함께 협력해 사회기반시설과 그 외 많은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했으면 한다"고 했다. 최근 국경문제를 둘러싸고 여야 간 대립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한 여론을 의식한 듯, "(내가 펠로시 의원을 축하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이어 국경순찰위원회와 이민세관단속국(ICE) 관계자 8명을 소개하며 국경장벽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그는 "이 분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에 감사를 표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장벽이 없으면 안보도 없다’고 한다"며 "나도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장벽 없이는 국경 안보도 없다. 벽이든 장벽이든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는 건 상관없지만, 매우 강력한 장애물이 없이는 국경안보가 작동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첨단장비의 도입이 국경장벽을 대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나는 이런 종류의 기술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드론이나 다양한 형태의 센서를 사용하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이 나라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자신의 행정부 아래 미국 경제가 잘 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길 원한 적이 없었다"며 "이는 경제를 비롯해 많은 것들이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로서 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잘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주 국경 보안, 국경 통제에 대한 내 입장을 피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뒤로 배석한 인사 중 일부도 단상에 올라 국경장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브랜든 저드 국경순찰위원회 위원장은 "(국경장벽은) 국경을 지키는 경비대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장벽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경비대원들은 다르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아트 델 쿠에토 국경순찰위원회 부위원장은 "(국경장벽 문제는) 정당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모두들 스스로 이 질문을 해보기를 바란다. 내가 여러분의 집에 들어갈 때 정문에 노크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창문을 통해 넘어오기를 바라는가?"라고 되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브리핑룸 단상에 오른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해 3월 한국의 대북 특사단과의 접견한 뒤 브리핑룸을 깜짝 방문한 바 있지만, 단상에 올라 정식으로 기자들을 마주하는 형식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뒤로 배석한 인사들을 가리키며 "이 분들이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회의를 위해 백악관에 와 있던 참이었다"며 "시기가 아주 적절했다. 그래서 나는 ‘나가서 기자들을 만나 국경장벽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브리핑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샌더스 대변인도 대통령과 함께 자리를 떴다.
미국 언론은 즉각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는 브리핑은 브리핑이 아니다’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브리핑룸에서 질문을 받지 않은 적이 있었지만, 그럴 경우 애초에 대변인실에서 ‘브리핑’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대통령이 질문을 받지 않으면 대변인들이 남아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것이 관례다.
미국 유력 월간지 애틀랜틱은 "한 기자는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에 ‘브리핑룸의 목적은 질문을 받는 데에 있다’고 외쳤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을 목적으로 브리핑룸을 쓰겠다면 그게 브리핑룸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현 행정부의 관점에서 언론은 그저 대통령의 관심을 받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