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아침 아마존·비자카드·삼성전자·델컴퓨터 등 글로벌 기업의 대형 연구소 10여곳과 스타트업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벵갈루루 동부의 펀즈시티. 이곳에서는 아침마다 출근 전쟁이 벌어진다. 이미 펀즈시티로 진입하는 왕복 6차선 도로는 수백 대의 오토 릭샤(삼륜차)와 우버 차량으로 가득 차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IIT(인도공과대)의 인재들이 인도를 떠나지 않고 국내 창업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인재를 품어줄 인도 내수 시장과 IT 산업 인프라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그 핵심부가 수도 뉴델리에서 1800㎞ 떨어진 데칸고원 위에 있는 신산업의 요람 벵갈루루다.
IIT델리 출신인 사친 빈살과 비니 반살이 2007년 벵갈루루 시내의 한 빌라 2층에서 창업한 인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플립카트는 지난해 4월 83만㎡(약 25만평) 규모의 신사옥을 세웠다. 직원 7300이 일하는 이 신사옥은 사무공간뿐 아니라 미니 골프장, 크리켓 운동장, 농구장 등 직원 복지 시설도 갖췄다. IIT델리 동문회를 담당하는 산지브 산기 교수는 "플립카트뿐 아니라 1000명이 넘는 IIT 동문이 벵갈루루에서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벵갈루루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지난달 20일 밤 벵갈루루 동부의 한 공유 오피스 사무실에는 스타트업 대표와 직원 5명이 노트북을 켜놓고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벽 대신 서 있는 전면 화이트보드에는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 일정과 개선 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앱으로 전화를 걸면 전 세계 이용자 중 한 명과 무작위로 연결되는 '랜덤 전화' 앱 오픈톡의 사무실 광경이었다. 올해 5월 런칭한 이 앱은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70만명이 어학 공부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업체를 창업한 IIT 출신 수미트 자인(34)은 이번이 두 번째 창업이다. 그의 목표는 인도에서 만든 서비스를 구글·페이스북처럼 전 세계가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자인 대표는 2007년 부동산 중개 사이트 코먼 플로어(Common floor)를 창업해 2016년 2억달러(약 2260억원)에 매각했다. 그는 "내가 고용했던 1000명이 이후 자신의 회사를 차려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며 "기업인을 존중하고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는 지금의 인도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는 남부 카르나타카주(州)의 주도로 2000곳이 넘는 IT 기업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도시다. 도시 인구 1200만명 중 400만명이 IT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벵갈루루는 해발 900m 높이의 데칸고원 위에 있어 연중 날씨가 20~30도로 서늘하고 공기도 맑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조성된 이유와 비슷한 것이다. 또한 인도 우주산업을 총괄하는 우주연구원(ISRO), 인도과학원 등 정부 연구 기관이 들어서 있어 IT 인재가 모이기에 제격이었다. 여기에 인도 내에서 최초로 IT 산업 유치 정책을 펼친 주 정부의 노력이 더해졌다.
IT 붐 초창기에는 주로 글로벌 기업의 콜센터가 들어섰다. 영어가 가능한 저렴한 인력, 북미 대륙과 정반대인 시차(12시간)라는 장점 때문에 밤에도 운영 가능한 콜센터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차츰 IIT 출신 고급 엔지니어를 활용하려는 대기업 연구소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도 스타트업의 28%(1만1000곳)가 벵갈루루에 본사를 두고 있다. 투자도 활발해졌다. 2016년 32억달러(약 3조6000억원), 2017년 37억4000만달러(약 4조2000억원) 수준이던 벤처캐피털 투자가 지난해 65억5000만달러(약 7조3000억원) 규모로 배 가까이 뛰었다.
한국 스타트업도 벵갈루루를 거점으로 인도 시장 진출에 나섰다. 인도에서만 월 100만명이 이용하는 동영상 학습 앱(애플리케이션) 스키피를 서비스하는 한국 스타트업 플레인베이글도 최근 벵갈루루에 자리를 잡았다. 플레인베이글 등 12곳의 한국 기업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에 입주해 인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근형 코트라 벵갈루루 무역관장은 "벵갈루루에서는 영어와 코딩 실력이 우수한 개발자 인건비가 한국의 4분의 1 수준"이라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에 벵갈루루는 최적의 입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