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 앰뷸런스는 흰 바탕의 붉은 적십자 마크를 차량 옆·뒷면은 물론 지붕에도 붙이고 다닌다. 지상에서는 물론 하늘에서도 쉽게 앰뷸런스 마크를 식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전쟁 중에도 아군, 적군을 불문하고 부상자나 전상자들은 공격하지 말고 보호하자는 인도주의 정신에 따른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무언(無言)의 합의로 글로벌 규범으로 정착되어 있다. 병원도 이런 규범이 적용되는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지난달 31일 정신질환을 앓던 30대 남성이 서울 도심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도중 흉기를 휘둘러 담당 의사를 살해한 사건은 충격적이다. 대다수 병원에서 크고 작은 폭력이 일상적으로 의료진에게 가해지고 있다. 중환자실 근무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환자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81%에 이르렀다. 신체적 협박(63%), 성적 폭력(28%), 신체 폭력(9%) 등도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들은 경비를 강화하고 직원 호출버튼 등으로 의료진을 보호하고 있지만 폭력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의사와 환자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 진료할 책임이 있고 환자는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오진이나 의료 사고 등 억울하고 비통한 일이 발생했다고 법보다 감정을 앞세워 의료진에게 비난과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의료진에게 위협이 될 뿐 아니라 다른 환자 진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의료 현장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인 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법 마련이 시급하다. 하지만 진료 현장의 불만과 폭력은 국내 의료제도의 근본적 문제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저(低)수가로 운영되는 현 의료제도는 환자 1인당 진료 시간을 줄여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진료하도록 만들고 있다. 의료 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의료의 질을 개선·발전시켜야 한다. 또 의사와 환자 간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의료진을 존중하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진이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국민도 의료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공통의 인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