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튀긴 팝콘처럼 신선하다. 오는 3일 개봉하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브)는 '여름'이라는 뜻만큼 싱그럽고 찬란한 음악 영화다. 주인공은 고려인 출신으로 러시아의 전설적 록 스타가 된 빅토르 최(1962~1990). 당대의 로커였고 현재도 그를 따라갈 인물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빅토르 최가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기 직전까지의 모습을 담아냈다. 한국 배우 유태오가 2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해 빅토르 최를 연기했고, 올해 5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만큼 귀에 익은 음악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레토'는 흘러내리는 과즙 같은 팝 음악과 파격적인 화면으로 관객을 홀린다. 1981년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빅토르 최(유태오)는 록 스타 마이크(로만 빌릭)와 그의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셴바움)를 우연히 만난다. 합법적인 록 공연장이 하나밖에 없고, 그마저도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무대에 서야 했던 시절, 마이크와 나타샤는 빅토르의 노래를 들으며 잊었던 금기를 향한 열망을 깨닫는다.
줄거리가 딱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어떤 장르의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당대의 청춘이 품었던 풋풋한 꿈과 열정을 그린다. 데이비드 보위와 이기 팝, 루 리드와 토킹 헤즈의 음악이 흥건한 빗물처럼 튀어오르고, 주인공들은 종종 뮤지컬 주인공처럼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노래 부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사를 읊는다. 흑백으로 찍은 필름이지만 분필로 휘갈긴 총천연색 낙서를 입혀 보여주기도 한다.
재기발랄하다 싶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고지식하다. 빅토르 최의 분출하는 노래와 연주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지도 않고, 이들의 날 선 비판에 힘을 주지도 않는다. 나탸사와 마이크, 빅토르를 둘러싼 세 사람의 긴장감을 뾰족하게 만들려 애쓰지도 않는다. 다만 열망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젊은이들이 누군가 집에 모여 밀수한 서양 LP를 숨어 듣고, 그들의 앨범 재킷 사진을 따라 소묘하는 풍경을 찬찬히 그려낼 뿐이다. 암울한 시대를 살았고 또 살아내야만 했던 젊은 그들의 시간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이다.
빅토르 최를 연기한 유태오는 러시아어로 대사를 읊고 노래를 부르지만 거슬림 없이 이 흑백 풍경에 녹아든다. 빅토르 최가 '난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네. 곧 여름도 끝나겠지'라고 나직이 읊조릴 땐 뜻밖에 목이 멜 수도 있다. 그들은 오지 않는 답장을 천진하게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용감했던 것이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