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콜 드롭스 야드예요." 택시 기사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대형 쇼핑몰이라더니, 백화점처럼 생긴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손님에게 기사가 말했다. "광장으로 걸어 들어가야 해요. 택시는 진입할 수 없습니다."
5분쯤 걸었을까. 대형 광장이 발밑으로 펼쳐졌다. '석탄을 내려놓는 마당'이란 뜻의 콜 드롭스 야드(Coal drops yard). 철도와 운하가 맞닿아 교통 요지였던 런던 킹스크로스역 근방에서 1850년대부터 석탄 저장 창고로 쓰인 곳이다. 폐허로 버려졌던 이곳이 탈바꿈한 건 2001년부터 민관 협력으로 30억파운드(약 4조2740억원)를 투입한 킹스크로스역 주변 도심 재생 프로젝트 덕분. 한때 런던의 모든 난방을 책임졌던 콜 드롭스 야드는 3년 전 1억파운드(약 1424억원)를 들여 복합 쇼핑 광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역 근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 학생들이 간판 디자인 등에 참여했다. '킹스크로스역' 하면 떠오르는 '해리 포터'의 9와3/4 승강장처럼 오래돼 낡았지만 마법의 공간으로 연결해줄 듯한 기대가 부풀어올랐다.
공중엔 날개인 듯, 책을 뒤집어 펼친 듯한 형상의 지붕이 펼쳐져 있었다. 건축·디자인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하는 토머스 헤더윅의 설계. 두 석탄 창고 지붕에 벽돌과 주철(cast-iron)을 덧대 구부리듯 끝이 서로 맞닿게 디자인했다. 지붕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파도 같았고, 헤더윅은 이를 '키스하는 지붕'(kissing roofs)이라 불렀다. 9290㎡(약 2810평) 규모의 쇼핑몰은 수백 점포가 빼곡히 들어찬 종전 쇼핑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입점을 원한 1200여 브랜드 중 선택된 건 65곳뿐. 3층 규모에 식당, 카페, 뷰티·패션숍을 합쳐 현재 50여 매장이 문을 열었다. .
주인공은 광장이었다. 광장에서 춤추는 10대, 유모차를 밀며 겨울밤 산책을 즐기는 여인들. 첼시에서 왔다는 그웬 로젠폴드씨는 "탁 트인 광장을 즐기다 마치 동굴 탐험을 하듯 매장에 들어가는 구조가 신선하다"고 했다. 리즈 출신의 캐서린 애시워스씨는 "스톡홀름 디자인 가구인 '헴'이나 영국 향수 '밀러 해리스' 등 장인 정신 넘치면서도 희소성 있는 브랜드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스위스에서 온 알렉스 벤트씨는 "힙(hip)한 레스토랑이 곳곳에 있어 좋다"며 "여름에 광장으로 태닝하는 이들이 밀려올 것 같다"고 했다. "브랜드가 다양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헤더윅 건축 디자이너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사람들이 대화하고 교류할 대형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서로를 연결해주는 장소를 창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쇼핑센터 한쪽엔 영국의 가구·조명 디자이너 톰 딕슨의 쇼룸이 있다. 그 옆엔 역시나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폴 스미스 매장. 오랜 친구인 이들은 킹스크로스역 재생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다. 이 밖에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 디자이너가 만든 가방 브랜드 '로스트 프로퍼티 오브 런던'이나 런던 수제 안경 전문점 '큐비츠', 런던 출신 구두 디자이너 브랜드 '트레이시 뉼스' 등 떠오르는 새로운 브랜드들이 매장을 채웠다.
지붕 밑 대형 공간의 주인은 삼성이다. 1861㎡(약 563평) 규모에 삼성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가 내년 들어선다. 이미 킹스크로스에 자리 잡은 페이스북이 규모를 확장했고, 구글도 곧 합류할 예정이라 'IT 허브'로 발돋움할 것이란 뉴스가 쏟아진다. 포브스는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쇼핑몰이 줄줄이 문을 닫는 요즘, 콜 드롭스 야드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면서 첨단 IT 기기를 즐기고, 쇼핑도 할 수 있는 멀티 공간으로 종전의 몰 문화를 바꿀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