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서울 지하철 혜화역 앞에서는 이색 집회가 열렸다. 유명 여성 단체가 주도하는 것도 아닌데 10~30대 여성 1만2000명이 온라인을 통해 모였다. 여성만 참여할 수 있고, 상당수는 처음 집회에 나와본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불법 촬영물을 찍는 남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고 했다. '혜화역 집회'로 불리는 '편파 판결, 불법 촬영 규탄 집회'의 시작이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린 집회가 지난 22일 6회째를 맞았다. 집회를 주도해 온 온라인 여성 모임인 '불편한 용기'는 "다음 집회는 무기한 연기한다"며 사실상 개최 중단을 선언했다.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였다는 평가와 함께 남성 전체를 비하해 성별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22일 온라인 여성 모임 ‘불편한 용기’ 주최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 6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당국에 항의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주장 11만명, 경찰 추산 1만2000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6차 집회에 11만명이 참석했다"고 했다. 하지만 통상 2만명을 수용하는 광화문 광장 북측을 다 채우지 못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한민국 웹하드 대표이사 청와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정부가 불법 촬영물 유통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아가리 페미 남대통령'(입으로만 페미니즘을 외치는 남성 대통령이라는 뜻) 사죄하라" "첫눈 왔다 탁현민 좀 내보내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문 대통령이 여성 비하 논란이 일었던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내보내지 않고 있다며 비판한 것이다. 참가 여성 8명은 무대에 올라 머리카락을 모두 잘랐다. "남성 권력에 저항하고, 여성 인권을 되찾는 의지를 다진다는 의미"라고 했다.

지난 5월 첫 집회는 홍익대 미대 몰래카메라 사건이 발단이 됐다. 지난 5월 한 여성 누드모델이 홍익대 미대 수업 시간에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몰래 찍어 유포했다가 구속되자 여성들은 "범인이 여성이어서 구속한 것 아니냐"며 "편파 수사"라고 했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와중에 지난 8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여비서 성폭력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받자 참가 인원은 더 늘었다.

혜화역 집회는 여성과 관련, 단일 주제로 열린 집회로는 2000년대 호주제 폐지 운동 이후 최대 규모였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기성 여성 운동 단체가 아니라 온라인을 기반으로 익명 20~30대 여성들의 느슨한 연대가 이 정도 규모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혜화역 집회로 당장 제도가 바뀌진 않았지만 불법 촬영물이 단순히 야동(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성범죄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도록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혜화역 집회는 현장에서 나온 일부 과격한 주장 탓에 남성들의 반발과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난 7월 3차 집회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재기해(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처럼 투신하라는 뜻)"라고 했던 발언도 논란이 됐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혜화역 집회는 온라인에서 남성의 말이나 행동을 대상으로 모욕을 주던 전략을 오프라인에서도 그대로 쓰면서 많은 이의 공감을 얻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했다.

집회 운영진 측은 6차 집회에 앞서 향후 집회를 무기한 연기하는 이유를 게시판에 올렸다. 이들은 "진보·보수 진영 할 것 없이 남성 권력의 공격을 무차별적으로 받아왔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운영진은 여성이 말하는 여성 의제가 곡해되지 않고 진의를 전달하며 사회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는 글을 썼다. 남성 혐오와 반(反)문재인 성향을 보이는 여성 인터넷 사이트 '워마드' 회원들이 집회에 합류하고, 현 여권까지 등을 돌리자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