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업무정지) 사태를 막기 위한 임시 단기지출 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20일(현지 시각) 공화당 수뇌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장벽’ 예산이 포함되지 않은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NBC 방송에 따르면, 폴 라이언 미 하원 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90여분 간 회동했다. 라이언 의장은 회동 후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밤 상원이 통과시킨 단기지출 법안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경 안보에 관한 조항이 없는 한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계속되는 결의안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의장은 공화당 의원으로서 마지막 조찬 회의에 참석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호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폴 라이언(오른쪽) 미국 하원 의장이 2018년 12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 후 기자들 앞에서 말하고 있다.

앞서 미 상원은 19일 연방정부 내 15개 부처 중 9곳과 산하기관들에 내년 2월 8일까지 지금과 같은 수준의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의 단기지출 법안을 마련, 구두 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오는 21일 마감 기한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가 예산안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2019회계연도 예산안에 국경장벽 예산 50억달러(약 5조6300억원)의 책정 여부를 놓고 대립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을 불사하더라도 장벽 예산을 포함시키겠다고 경고했었다.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전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도 법안 통과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남은 건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서명이었다.

그러나 라이언 의장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신이 주장했던 국경 예산에 관한 내용이 빠졌기 때문이다. 라이언 의원은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응해 50억달러 규모의 장벽 예산이 포함된 법안을 마련해 투표에 나설 것인지 등 구체적인 차후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이 법안에 서명할지 여부를 직접 밝히지는 않았다. 이날 백악관에서는 이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회의가 열렸다고 NBC 방송은 전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은 국경 경비 없이 더 이상 나아가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라면서도 "대통령은 자신의 선택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12월 11일 미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에서 둘째) 대통령과 척 슈머(맨 오른쪽)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맨 왼쪽)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왼쪽에서 둘째) 미 부통령은 말 없이 앉아 있다. 예산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슈머·펠로시 원내대표는 방송 카메라를 앞에 두고 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 등을 두고 격한 설전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장벽 예산 책정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미 동부 시각 기준 이날 오전 10시 50분쯤 트위터에 "내가 마지못해 옴니버스 예산안에 서명했을 때, 나는 지도자로서 장벽과 국경 안보를 약속받았다"며 "연말(지금)까지 반영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건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사랑하는 미국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국가의 국경 안보를 위해 싸운다"고 비판했다.
지난 1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과 장벽 설치를 두고 갈등을 겪으며 셧다운을 초래한 바 있다. 3월 또다시 셧다운 위기가 닥쳤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요구했던 장벽 건설 예산(250억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16억달러를 책정받고도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옴니버스 예산안에 서명했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는 이같은 예산안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50분쯤 또다시 트위터에 "민주당, 지금은 정치보다 함께 모여 미국인의 안전을 우선할 때"라며 "국경 보안이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을 거부하면 미 연방정부는 22일 0시 이후 일부 폐쇄된다. 미 시카고트리뷴은 "셧다운이 발동되면 80만명 이상의 연방정부 근로자들이 무급으로 일해야 하는 등 어려움에 처할 것이고, 크리스마스 연휴 전후 정부 운영이 마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