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20일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에서 '사실혼 관계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치겠다'고 한 데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가구가 늘고 있는데도 국가 지원에서는 여전히 차별과 편견을 겪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문재인 정부는 '혼인한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전통적 가족 형태 이외에 1인 가구, 동거 가구, 한 부모 가구 등 다양한 가족들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이번 조치도 같은 취지다.
특히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18년간 동거하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혼인신고를 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국회의원 시절 동거 커플에게 법률상 혼인 부부에 준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생활동반자법'을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장관 인사청문회 때도 "1인 가구와 동거 커플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건강가정기본법(건가법) 개정을 주장했다. 진 장관은 특히 건가법이란 이름 자체가 '건강한 가정'과 '건강하지 않은 가정'으로 국민을 나눠 차별을 조장한다고 주장해왔다.
여가부 측은 "혼인에 대한 가치관 변화로 앞으로 동거 가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라며 "법도 이런 시대 변화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통계청이 만 13세 이상 3만9000명을 조사한 '2018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안 해도 같이 살 수 있다'는 응답(56.4%)이 처음으로 '결혼을 해야 한다'(48.1%)는 응답을 앞질렀다.
프랑스·독일·스웨덴 등 해외 선진국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거 커플에게도 혼인신고한 부부가 받는 각종 국가 혜택을 비슷하게 주고 있다.
그러나 여가부가 건가법을 개정해 사실혼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한다 해도, 당장 이들이 혼인신고한 부부와 똑같은 권리를 모든 면에서 누리게 되는 건 아니다. 여가부는 건가법 외에도 다문화가족지원법, 아이돌봄지원법 같은 여가부 관할 법률을 모두 개정해 사실혼 커플도 여가부가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하지만 민법이나 상속세법처럼 다른 부처가 관할하는 법은 건드릴 수 없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료, 주택 청약 신청 등에서도 동거 커플이 법적 부부와 같은 혜택을 받으려면 관련 부처가 나서서 관련 법을 모두 바꿔야 한다.
가족의 법적 정의를 바꾸는 일은 사회적 합의를 먼저 거쳐야 하는데, 여가부가 지나치게 앞서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 법률에서 가족의 정의를 바꾸려면 사실혼 당사자들이 법적으로 어떤 차별을 겪고 있는지, 어떤 법을 어떤 식으로 바꿔야 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면서 "여가부가 건가법만 고치는 식으로 단편적으로 진행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날 여가부는 앞으로 법무부와 협의해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출생신고를 할 때 '혼인 외 출생'을 별도로 표기해야 하는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