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근무제로 임금이 줄어들면서 경비원 110명 중 98명이 사직한 부산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 아파트 전경.

주 52시간 근무제가 부산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 경비원들의 대량 실직 사태를 초래하게 됐다. 100명에 가까운 경비원들이 "임금이 줄어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동시에 사직서를 낸 것이다.

19일 부산 남구 LG메트로시티 아파트와 남구청 등에 따르면 이 아파트 경비원 110명 중 98명이 오는 31일 일을 그만둘 예정이다.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임금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근무 중인 경비원들에 따르면 이들의 근무시간은 현행 격일 24시간 근무(무급 휴게 시간 8시간 30분 포함)에서 주 52시간 실시 후 격일 14시간 근무(무급 휴게 시간 3시간 30분 포함)로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월급(실수령액 기준)은 185만원에서 110만원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한 경비원은 "100만원이 겨우 넘는 월급을 받고서는 생활할 수 없어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건물 80동, 7374가구로 부산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다.

경비원들의 대량 실직에는 최저임금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10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내년부터 통합 경비 시스템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최저임금 추가 인상을 앞두고 늘어난 관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주 52시간 근무로 경비원이 근무하지 않는 시간대가 생기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심해져 경비원을 늘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입주민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 경비 시스템 도입 여부를 주민 투표에 부쳤다. 투표에는 주민 79.1%가 참가해 이 중 75.2%가 경비 시스템 도입에 찬성표를 던졌다. 통합 경비 시스템은 아파트 단지에 차단기와 방범카메라를 새로 설치하고 보안업체 직원 11~12명이 격일로 조를 나눠 24시간 순찰한다.

부산 LG메트로시티 아파트에 퇴직을 앞둔 경비원들이 입주민에게 보내는 작별인사가 붙어 있다.

경비원들은 사직을 앞두고 아파트 곳곳에 '정든 아파트를 그만두게 돼 마음이 아프다'는 글을 붙였다. 이들은 엘리베이터에 붙인 글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저희로서는 너무나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으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며 '새로운 직장을 찾아 엄동설한에 칼바람을 맞아가며 차가운 아스팔트 길 위에서 이리저리 정처 없이 헤맬 것을 생각하니 서글퍼지기 짝이 없다'고 썼다. 입주자대표회의 등은 "월급이 줄면 퇴직금이 적어지기 때문에 일단 퇴직하고 차후에 재입사하려는 경비원이 많은 듯하다"고 말했다.

주 52시간과 최저임금 문제는 주민 간 마찰도 불렀다. 통합 경비 시스템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은 아파트 상가 여러 곳에 현수막을 붙이고 반대 서명을 받았다. 또 다른 주민은 인터넷 게시판에 '차라리 관리비를 몇천원 인상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등의 글을 올렸다. 주민 김모(49)씨는 "방범카메라는 경비원처럼 밤늦게 수상한 사람이 돌아다녀도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보지 않는다"며 "아파트 내부 안전에는 기계식 경비가 아니라 기존 경비원 체제가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통합 경비 시스템은 24시간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경비원을 두고 휴게 시간을 줄 때보다 경비 공백이 적다"며 "향후 가능한 한 경비원을 충원해 전체 경비 인원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