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 시각) 새벽 3시쯤 인도 케랄라주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케랄라주 힌두교 성지인 사바리말라 사원에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반대한다는 이유에서다. 베누고팔란 네어란 이름의 이 남성은 병원으로 호송됐지만 전신에 화상을 입고 결국 사망했다.

올해 9월 28일 인도 대법원은 10대부터 50대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금지해온 인도 유명 힌두교 성지 사바리말라 사원에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허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게 신을 숭배할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것이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입장을 결사 반대하는 힌두 우익 단체가 사원 입구를 막고 방화·분신자살·폭행 등 폭력시위를 벌이면서 인도 사회는 후폭풍에 휩싸였다. 싸움은 힌두 우익 단체를 지원하는 집권당 인도국민당(BJP)과 케랄라주 집권당 인도공산당의 정치적 대결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현재 사바리말라 사원은 연례 최대·최장 참배기간인 만달라 푸자 순례기(11.16~12.27)을 맞아 신도들에 개장됐지만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여성도 입장하지 못한 상태다.

◇ 금녀의 구역이었던 ‘사바리말라 사원’···여성인권 vs 힌두교 전통

‘사바리말라 사원 논쟁’은 인도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인권’과 ‘힌두교 전통’의 대립을 상징한다.

2018년 9월 28일 인도 대법원은 매년 2000만명 이상의 순례객이 찾는 사바리말라 사원이 10대부터 50대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을 위헌이라 판결했다.

인도 케랄라주(州)에 위치한 사바리말라 사원은 매해 2000만명 이상의 순례객이 찾는 대표적인 힌두교 성지다. 10대부터 50대 가임기 여성의 입장을 전면 금지해온 것으로 악명이 높다. 더욱이 2015년 사원의 책임자가 "생리여부를 검사하는 기계가 생기기 전까지는 여성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해 젊은 여성들의 분노를 샀다. 이에 인도 여성들은 인터넷에 ‘#Happytobleed(생리는 축복)’ 캠페인을 벌이는 등 여성 출입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인도의 여성단체들은 사바리말라 사원이 가임기 여성의 입장을 금지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심각한 권리 침해라고 지적해왔다. 인도진보여성협회(AIPWA)의 카티바 크리슈난은 "카스트에 따라 사원 출입을 차별하는 것이 위헌인 것처럼 성별에 의한 차별도 당연히 위헌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힌두교 전통주의자들은 사원에 여성의 출입을 막는 것이 성차별이 아니라 힌두 신화에 따른 종교적 전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순결을 지키는 남신 ‘아야파’를 모시는 사원의 특성상 여성 출입을 금지할 뿐 다른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아야파는 여성 악마 ‘마히시’를 물리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났다. 아야파는 마히시를 무찔렀고 마히시는 여신으로 다시 태어나 아야파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아야파는 신도들이 자신을 찾지 않을 때까지 순결을 유지해야만 한다. 신도들의 기도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임기 여성 출입 금지는 아야파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조치일뿐이라는 주장이다.

2018년 9월 28일 개혁적 성향의 인도 대법원은 마침내 ‘힌두교 전통’이 아닌 ‘평등’의 손을 들었다. 대법원은 사바리말라 사원이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이라 판결했다. 5명의 대법관 중 네 명이 위헌에 손을 들었다.

디팍 미스라 대법원장은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등하다"며 "힌두교의 가부장적 전통이 개인의 종교에 대한 순수한 헌신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판결을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인도 대법원이 내린 동성 성관계 금지 조항 폐지, 간통죄 폐지 판결과 함께 인도 사회를 바꿀 진보적 판결이 또 탄생했다"면서 "사바리말라 사원이 진보적 사법 제도와 힌두 전통의 대결장이 될 것"이라 평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위헌 판결이 ‘힌두교 전통’을 무시한 역차별이라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판결을 내린 5인의 대법관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인두 말호트라는 ‘종교의 자유’를 다르게 해석했다. 사바리말라 신전의 여성 출입 금지 조치는 종교적 전통에 따른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다양한 종교와 종파로 구성된 인도 사회의 다원성과 자유를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는 또다른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바리말라 사원의 고승들이나 보수적 남성들뿐만 아니라 힌두 전통을 중요시하는 일부 여성들도 반발하고 있다. 힌두교의 전통을 현대적 관점으로 좁게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이 여성들은 인터넷에서 ‘#Readytowait(사바리말라 사원에 입장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 캠페인을 벌이는 등 나름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 집권당 BJP가 ‘폭력 시위’ 주도···실제 여성 입장은 아직도 불가

사바리말라 사원에 여성 입장 허용을 두고 분 거센 역풍은 힌두 우익 단체에 의한 폭력 시위로 비화돼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사바리말라 사원이 참배 기간 신도들에 개방되자 힌두 우익 단체들이 사원을 오르는 언덕부터 입구까지 둘러싸고 여성의 출입을 막으려 시위 중이다.

이들은 사원에 입장을 시도하는 여성 신도들의 차에 돌을 던지고 위협하는 등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중 이다. 1만5000여 명이 넘는 경찰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지만 아직까지 단 한명의 여성도 사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10월 판결 이후 첫 개장 시기에 케랄라주 경찰이 2000여 명이 넘는 시위꾼들을 체포하기까지 했지만 사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사바리말라 판결’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는 정치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시위에 나선 힌두 우익 단체의 배후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이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여성 출입을 반대하는 행사를 하기 위해 인도국민당 케랄라 지부 지도자 수렌드라가 사바리말라 사원에 침입하려다 체포돼 구금됐다. 전통적으로 인도공산당 텃밭인 케랄라주 의회에서 한 석밖에 차지하지 못한 인도국민당이 가임기 여성 출입 문제로 힌두전통주의자들에 호소하며 내년 총선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힌두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집권한 인도국민당은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에게 단합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인도의 세속주의 헌법을 힌두 헌법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런 극단주의 탓에 인도내 소수세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비난이 크다.

비자얀 케랄라주 총리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인도국민당을 비난하며 "케랄라주는 대법원의 판결을 따른다. 여성 출입을 막는 이들을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 밝혔다.

포춘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 20위에 선정된 인도 인권변호사 인디라 자이싱도 17일 인도국민당이 대법원의 판결에 공개적으로 불복종하고 있다며 실망감을 표명했다.

자이싱은 "인도국민당 집권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가 눈에 띄게 늘었다"면서 "이들은 여성들이 부엌에 갇혀 아이나 낳기를 원한다. 혹시 여성이 목소리를 내면 공격하고 살해한다"고 했다.

◇ 여성들의 입장 시도도 끝나지 않아···여성 생리 터부시하는 인도 사회에 경종

‘복고주의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가임기 여성 출입 금지’라는 전통적 금기가 깨진 것은 여성의 생리를 터부시해 온 힌두교의 오랜 관습에 경종을 울렸다.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전면 금지하는 사바리말라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인도의 힌두교 사원 대부분은 생리중인 여성의 입장을 금한다. 생리중인 여성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라 여겨져서다.

인도내 무슬림 등 다른 종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바리말라 판결 이전에도 인도 무슬림 여성 단체가 대법원에서 모스크(이슬람 사원) 입장 허용 판결을 받아냈다. 인도 저널리스트 라즈딥은 힌두사원의 여성 출입 금지 관습을 사티(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함께 태워 죽이던 힌두교 악습)에 비교하며 "모두가 싫어하는 전통은 멈추는 것이 도덕적 책임"이라 말했다.

여성에 대한 종교적 차별은 다른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힌두민족주의를 연구해온 델리대학교 영문학 교수 프렘 비자얀은 "종교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공고화하고 또 이를 합리화하는 데 쓰일 수 있다"면서 "이는 또한 종교적 차별의 일환인 ‘카스트’ 제도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폭력 시위에도 불구하고 아야파신을 숭배할 권리를 찾으려는 여성들의 시도 역시 계속된다. 현지 매체 더뉴스미닛은 18일 인도 첸나이 지방 여성 신도 30명이 23일 사바리말라 사원에 여성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입장을 시도할 계획이라 전했다. 이들은 케랄라 주정부에 안전을 위한 도움을 요청한 상태다.

여성신도들의 입장을 돕기 위해 나선 인권 활동가 셀비 바노는 "극단주의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남성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신도이며 그들도 우리의 권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바노는 "이전에는 여성 한 명이나 두 세명 정도가 개별적으로 입장을 시도하다 실패했지만 집단적 입장 시도는 처음이라 성공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면서 "힌두 우익 단체에 의한 공격이 쏟아지겠지만 우리는 당당히 공개적인 입장을 시도할 것이다. 우리에겐 의지와 집단으로서의 힘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