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상력의 원동력은 걱정"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을 웃긴 이 사내
"나를 즐겁게 못하면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없어"
"막 그린듯 정교한 그림, 안보고 그려야 잘 그려… 검색 멈춰야 상상의 길 열린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 ’있으려나 서점' 등으로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웃긴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45세).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 마흔에 데뷔해서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왕파리와 편집증 환자만 상대하다 책에 환멸을 느낀 조지 오웰의 ‘서점의 추억'과는 정반대의 서점이 있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 그곳을 방문한다면 세상의 모든 책이, 서점이, 작가들이 달라 보일 것이다. ‘있으려나 서점'엔 "있다마다요"하면서 책을 꺼내주는 변두리의 싹싹한 민머리 서점 주인과 달빛 아래서만 보는 책, 기침하는 책, 뛰어다니는 책, 수중 도서관, 서점 결혼식 등 엉뚱하고 귀여운 책들이 가득하다.

이 책에서 가장 짠한 챕터는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랐던 책’이다. 그 장엔 오늘날 종이책을 쓰고 만드는 모든 출판인의 약하고 장하고 애틋한 마음이 다 깃들어있다.

"오늘도 전혀 못 팔았군. 다 재밌는 책인데…"
"이런 책을 만들어야 몇 명이나 읽을까요?"
"됐네. 난 이미 과거의 작가인걸."

서점 주인, 편집자, 출판사 사장, 노작가, 작가 지망생 소녀… 그들은 미안한 기색과 아련한 눈빛으로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복화술로 주고받는다. ‘미안해요. 베스트셀러를 터뜨리지 못해서.’ ‘아직은 모르지. 우연히 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전 세계에 그림책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희한한 상상력의 대가, 요시타케 신스케를 만났다. 사무라이처럼 다부진 체격에 섬세한 쌍꺼풀, 혼이 날지 칭찬을 받을지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인터뷰 처음부터 끝까지 두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얹은 채였다. 비관적인 코미디언이나 지나치게 진지한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반경 5km를 벗어난 적 없는 45살 민머리 어린이의 한국행은 볼로냐 이후 두 번째 해외 나들이였다.

‘있으려나 서점'은 일본에서는 발매 3주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3개월 만에 3만 부를 돌파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걱정의 산물’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책과 서점에 대한 다정하고 웃긴 위로 ‘있으려나 서점'.

-짐짓 태연한 척해도 모두 맘속으론 ‘운 좋게 언젠가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희망을 놓지 않더군요. ‘있으려나 서점'에 등장하는 출판계 사람들 말입니다.

"15년 전, 제가 그랬죠. 서른 살에 일러스트집을 냈는데 전혀 안 팔렸어요. 그래도 ‘혹시나'하는 미련이 계속 남았어요.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번엔 잘 팔릴 거야' 희망을 품어요."

-어쩌면 그 미련하고 아련한 희망이 이토록 ‘가성비' 없는 출판 사업이 지속하도록 만드는 신비겠지요.

"맞습니다. 99%의 책이 독자 눈에 닿지도 못하고 사라지더라도. 어쩌겠어요? 세상엔 두 종류의 책만 있는걸. 베스트셀러가 된 책,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라는 책(웃음)."

-그런데 ‘있으려나 서점'에서 유일하게 없는 책이 있더군요. 전 그 책이 반드시 필요한 데 말입니다(웃음).

이 신통방통한 변두리 서점의 마지막 손님은 두 주먹을 불끈 쥔 남자다. "저… 혹시 ‘확실한 베스트셀러 만드는 법', 그런 책 있을까요?" 애틋한 주인장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며 책은 막을 내린다. "아… 그런 책은 아직, 없습니다."

"하하하. 그 마지막 장면은 정해놓고 시작했어요. ‘확실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면 내가 읽고 싶어요. 그러나 ‘아직, 없다'는 건 언젠가는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정말 사과일까'의 한 장면.

요시타케 신스케는 1973년생. 츠쿠바 대학 대학원 예술연구과 종합조형코스를 수료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그는 마흔 살이 되던 해인 2013년 첫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출간하고 일약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림책 작가로 떠올랐다. 사과 한 알을 앞에 두고 심각하게 관찰하는 어린이 이야기는 출간 첫해 일본에서만 13만 부, 3년 만에 22만 부가 팔렸다.

사과의 정체성은 아이의 걱정과 만나 생명이 들썩이는 ‘알’에서 반짝이는 ‘별’로 천변만화한다. 통제되지 않는 발명가 같은 요시타케의 기상천외한 추론은, 감정을 다룬 책 ‘심심해 심심해'를 비롯해 존재를 다룬 ‘이게 정말 나일까’ 죽음을 다룬 ‘이게 정말 천국일까’로 이어진다. 마침내 볼로냐국제도서전은 2017년 ‘벗지 말걸 그랬어'로 그에게 라가차상 특별상을 수여한다. 일본 어린이 12만 명은 올해 어린이날 인기투표에서 읽고 싶은 책 10권 중 요시타케의 그림책을 4권이나 골랐다.

-사실 요시타케 씨를 만나면 ‘어떻게 하면 재밌는 어른이 될 수 있는지’ 꼭 묻고 싶었답니다.

"가나가와현에 사는 가장 눈에 안 띄고 마음 약한 아이가 저였어요(웃음). 어릴 적부터 ‘뭘 해도 안될 거야'라고 자주 비탄에 빠졌어요. 그래서 항상 현재 상태의 반대를 가정해요. 어떻게 하면 즐거워질까, 덜 심심할까, 나쁜 생각에 지지 않도록 노력을 했어요. 그렇게 나를 즐겁게 하려는 연습이 그림책으로 나왔어요."

-책에 등장한 서가를 갖춘 무덤 아이디어는 정말 기발하더군요. 돌아가신 분과 살아있는 사람이 ‘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어요.

"예컨대 고인이 생전에 읽었던 책을 가져가고, 고인이 천국에서 읽으면 좋은 책을 넣어두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한 사람의 책'이에요. 사람마다 자기 인생의 책을 써간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은 채로 무덤까지 갈 수도 있지요."

-인생도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있다는 거군요. 끝까지 읽히지 않는 외로운 사람도 있고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공책을 읽으며 죽음을 공상하는 ‘이게 정말 천국일까'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천국에서 뭐 할까, 이런 무덤을 만들어줬으면 등등 아이와 깔깔깔 웃으면서 봤습니다. 당신 덕에 이젠 늙으신 부모님과도 제 아이들과도 웃으며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함빡 웃으며)다행이네요. 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당신들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질 못했어요.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동안 두려움이 있으셨겠죠. 살아계실 때, 저 또한 무서워서 죽음에 관해 묻질 못했습니다. 책을 보면서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이게 정말 천국일까'의 할아버지 놀이터 무덤과 ‘있으려나 서점'의 서점 무덤을 섞으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모든 그림책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앞으로 자기 안의 걱정많은 어린이와 살겠다는 요시타케 신스케.

-‘이게 정말 사과일까'에 나오는 아이는 누가 모델이죠? 사과 한 알을 두고 이게 우주에서 온 별일까, 반쪽이 바나나는 아닐까, 두렵고도 감각적인 온갖 희한한 상상을 이어가는 아이 말입니다.

"접니다. 걱정 많은 요시타케(웃음). 상상력은 잘못 쓰면 공포를 극대화하죠. 양날의 검이라, 항상 좋은 쪽으로 쓰려고 해요."

-지금 당신은 어떤 어른인가요?

"어린아이 같은 어른입니다. 제 나이 45살인데,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른들은 참 대단하지'라고 생각해요. 어린아이의 가치관으로 어른들을 본달까요. 어릴 땐 어른스러운 아이였어요. 나이 먹을수록 어려지다 보니 거기서 생기는 감정의 이격이 재밌어요. 걱정 많은 아이와 어리광부리는 어른이 공존한달까요. 그래서 제가 쓴 그림책의 주인공은 전부 저예요(웃음). 일부러 어린이의 마음을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막 그린 듯해도 왠지 공손하고 정교한 그림체는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그림을 잘 못 그려요. 미술대학교 교수님도 "못 그리는 애가 들어왔다"고 대놓고 핀잔을 주셨어요. 저는 눈앞에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데는 재주가 없습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단순하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동그라미와 점만으로 사람을 그리는 식이죠."

-놀이터나 기계 장치는 묘사가 매우 정교하더군요. 그림이 발전한 계기가 있습니까?

"안 보고 그리기 시작하면서 잘 그리게 됐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장면을 보고 암기해서 비슷한 것을 그렸더니 실력이 확 늘더군요. 닮은 듯, 간단하게 그릴 뿐입니다(웃음)."

어린이 독자들이 그의 그림을 그려서 편지로 부쳐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어’라고 할 때 말할 수 없이 기쁘다. "그거야말로 굉장한 일이 아닙니까?"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첫 독자가 아내와 아이들이라고 들었어요. 그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겠지요?

"아이들은 제 책에 기쁨으로 반응하죠. 아내는, 달라요. 뭐랄까 내 일에 흥미가 없달까요?"

-아무래도 어른이니까요(웃음).

"맞아요. 좀 심술궂고 신랄하달까요. 새 책이 나오면 "전의 책이 더 좋았어"라거나 중간쯤 읽다가 "다 알 것 같군. 지루하다니까"라고 해서 상처를 받곤 했죠. 아무래도 아내는 어른이니까요(웃음)."

-당연히 아내가 재미없다고 한 책이 잘 팔렸을 테고요.

"네. 그래서 아내가 "재미있다"고 하면 몹시 불안합니다(웃음)."

‘있으려나 서점'의 한 장면.

-집 근처 반경 5km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뭐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걸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게 무서워요. 바다를 건너는 일 따위는 못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편집자 덕에 처음으로 해외(볼로냐국제도서박람회)에 나가봤어요. 한국이 두 번째 외국행이에요. 등 떠밀려서 왔지만, 막상 용기를 내어 와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아무래도 당신의 상상력은 그렇게 생활을 단순화해서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좀 심심한 상태로. 그러니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게임이나 스마트폰에 매달려 살지도 않겠지요?

"게임은 안 해요. 스마트폰이 있어도 검색을 끝까지 해보지 않아요. 정답을 알면 생각을 멈추거든요. 궁금한 게 생기면 내 얕은 지식 안에서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서요. 아이들도 그렇죠. 모르는 게 많아서 더 이상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내죠."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자세. 돌아오지 못할까 무서워 반경 5km 밖을 나가지 않는 그에게 책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다.

마흔 살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을 했나요?

"광고회사에서 촬영용 인형이나 건물 등 미니어처 만드는 일을 했어요. 퇴근해서 밤에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일러스트를 그렸지요. 취미가 일이 된 셈이에요. 만약 처음부터 그림책 그리는 일을 했으면 오래 못했을지도 모르죠(웃음)."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그는 퇴근 후 낄낄거리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오로지 당신 한 사람을 위한 그림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내 그림은 나만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전 세계 독자들이 웃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나는 보통의 명랑한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지 않아요. 나의 어린 시절, 걱정 많은 어린이 요시타케를 재밌게 만들려고 그리죠. 걱정 많은 아이가 100명 중 10명은 있지 않겠어요?(웃음)"

-해외에서 상을 받을 땐 기분이 어땠지요?

"이해가 안 되고 놀라웠어요. 많은 분이 공감하는 걸 보고 생각했죠. ‘세상에 걱정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상을 받은 것도 5년 동안 벌어진 일도 다 꿈만 같아요. 앞으로 나올 책에 여러분이 ‘재미없다'고 하면, 그제야 ‘그럼, 그렇지.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가는군'하고 안심할 것 같습니다. "

-당신의 상상력의 원동력은 걱정인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항상 혼날까봐 걱정했지요."

-많이 혼나면서 자랐습니까?

"혼나지 않았어요. 혼날까 걱정만 했죠(웃음). 자주 혼났으면 혼나도 별거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혼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무서웠어요. 책을 만들면서도 저는 온갖 상상을 다 해요. 이런 표현은 상처가 되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거나 불편해하는 분은 없을까. 결례되는 표현은 전부 배제합니다. 그래서 저를 착한 사람으로 보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착하지 않아요. 나쁜 상상을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죠(웃음)."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법은 없어요. 성격도 비관적이라 ‘뭘해도 안될 거야'라고 자주 비탄에 빠지죠. 그래서 항상 현재 상태의 반대를 가정해요. 어떻게 하면 즐거워질까.”

-앞으로 어떤 상상과 걱정을 이어나갈 생각인가요?

"나에게 ‘이게 정말 사과일까'가 출발점이에요. 사과 한 알을 두고도 끝없이 걱정하며 즐거운 공상을 이어가는 거죠. 앞으로 저는 ‘이게 정말 천국일까'처럼 거대하고 말하기 두려운 죽음이라는 주제와 ‘벗지 않을 걸 그랬어'처럼 말도 안될 정도로 사소한 이야깃거리, 두 가지를 계속 상상하고 그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걱정 많은’ 어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저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심심한 나를 웃겼더니, 우연히 독자가 생기고 작가가 되었어요. 이건 확실히 운이죠. 그런데 운은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러니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게 다죠. 나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인생은 복잡하지 않아요. 걱정하고 웃고, 걱정하고 웃고, 그런 일의 연속이죠. 그러니 저처럼 용기를 내세요(웃음)."

문득 도서관에 반납된 책들에게 던진 그의 애틋한 질문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었어? 소중히 읽어줬어? 읽으면서 웃었어? 울었어?" 인터넷 검색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놀라운 마음의 정경을 보여주는 요시타케의 그림책처럼, 인생도 그렇다. 걱정만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웃음의 세계가 항시 대기 중이다. 매일매일 싱싱한 걱정과 웃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소소한 우리 인생에 경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