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학교 석달만에 전격합의
경영·공학·예술 융합 전공될 듯
업계 "규제는 안풀고 탁상행정"

연세대가 국내 4년제 종합대학 최초로 ‘e스포츠(프로게이머들이 겨루는 경기) 전공’을 신설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련 제안을 한 지 석 달 만이다. 게임이 유망한 학문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업계에선 "정부의 탁상행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연세대는 12일 오전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전공의 세부 내용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교육과정과 학과 규모, 신설 시기 등이 논의 대상이다. 학교 측 설명에 따르면 공학과 경영학·예술 등의 융합 전공 형태가 될 전망이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이날 본지 기자와 만나 "게임 산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아우르도록 할 것"이라며 "e스포츠 기획과 마케팅, 게임 프로그래밍과 디자인 등이 교육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e스포츠 선수를 특기자로 선발할 계획은 아직까진 없다"고 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지난 9월 문체부 주도로 시작됐다. 문체부 게임콘텐츠사업과 사무관이 사석에서 연세대 교수를 만나 "소위 스카이(SKY) 대학에서 체계적 e스포츠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해당 교수가 이를 김용학 총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현재는 전남과학대 등 2년제 전문대에만 e스포츠학과가 개설돼 있는데 명문대에서도 이를 가르친다면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연세대와 문체부, 콘진원 관계자들은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두 차례 미팅을 가졌고, 이날 전공 개설에 전격 합의했다. 당시 미팅엔 김용학 총장과 조현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 강경석 콘진원 게임본부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전공 신설은 교수 채용과 예산 등 문제가 걸려 있어 최소 1년은 진통을 겪는데 이번 결정은 이례적으로 빠르다"고 했다.

‘e스포츠 활성화’는 문체부의 역점 사업으로 알려졌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지난 10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e스포츠 저변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고, 상설 경기장 등은 관광지로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의 내년 e스포츠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2.5배 많은 88억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e스포츠 업계에선 "게임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닌데 정부가 보여주기식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는 그대로 둔 채 관련 학과를 개설해 e스포츠를 살리겠다는 정부 생각은 모순적"이라고 했다. 심야 시간대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 등 규제부터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e스포츠 산업 육성의 핵심은 아마추어 구단을 풀뿌리식으로 운영해 저변을 넓히는 것"이라며 "이런 작업엔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정부가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전공 개설’ 카드를 꺼내 든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신입생 대부분을 선발하는 현행 대입 제도는 지원 학과와 연관된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대학의 브랜드 파워를 활용하려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최상위 대학은 전공 개설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머지않아 ‘연세대 e스포츠학과 입시반’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김용학 총장은 "신설 전공의 종류와 무관하게 사교육은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