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영세 자영업자들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제로페이(소상공인간편결제) 사업 시범운영(20일)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재 제로페이 사업 가맹점 등록 수가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데다 신용카드 결제에 익숙한 이용자들을 모바일 간편결제로 유도할 마땅한 묘책도 없어 서울시의 고민이 쌓여져가고 있다. 특히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에 프랜차이즈 본사를 뒤늦게 끌어들이는 등 ‘가맹점 모집 영업’에 애로를 겪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까지 서울시가 확보한 제로페이 신청 가맹점은 1만6756곳이다. 서울시의 소상공인이 약 66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등록률이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가 1차 목표한 13만 곳에 한참 못미친다.
속을 들여다보면 더 참담하다. 전체 제로페이 등록 가맹점 중 가맹본부를 통해 등록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1만1000곳이 넘는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등록을 제외한 독립 자영업자 신청 건수는 5000곳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전체 66만 소상공인에서 차지하는 등록비율은 1%에도 훨씬 못미친다.
제로페이 시업의 본격 운영은 내년부터라 아직 가맹점 신청은 여유가 있다. 그러나 서울시가 연초부터 대대적인 홍보를 펼친 것에 비하면 현재의 가맹점 등록 현황은 서울시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는 최근 25개 자치구와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시 산하 기관에 ‘소상공인간편결제 가맹점 모집 홍보 협조 공문'을 보내는 등 제로페이 가맹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로페이 사업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공약으로 내건 정책으로, 향후 박 시장의 ‘대권 행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박시장은 지난달 22일 어깨띠를 두르고 을지로 지하상가를 돌면서 직접 가맹점 신청 독려를 하기도 했지만,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가맹점 모집 속도 안붙어...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에 SOS
서울시는 지난 3일 중소벤처기업부, 부산, 경남 등 지자체와 함께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 박원순 시장, 중기부 홍종학 장관 등이 참석한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대표들이었다. 교촌치킨, 비비큐, bhc 등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 대표들과 이디야커피, 할리스커피와 주요 편의점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참석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대표들은 소속 가맹점들이 제로페이 가맹점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협약서를 썼다.
서울시는 이날 행사 후 "현재 제로페이에 가입 신청했거나 가입의사를 표명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가맹점은 전국적으로 6만2465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경우,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을 시작한 10월 29일부터 11월 28일까지 1만6756개의 가맹점 신청자 중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차지하는 비중(1만1776개)이 70%가 넘는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경우 가맹본사에서 가맹점주의 의사를 확인한 후 일괄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서울시가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의 대부분을 프랜차이즈 본사에 의존한 셈이다.
박기영 한국프랜차이즈협회 회장은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24만개가 넘는데 이들 대부분이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도록 협회가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결제 수수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제로페이 사업에 자영업자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현재 가장 부담을 느끼는 게 결제수수료가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경기불황은 아랑곳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임대료, 최저임금 상승, 소비위축에 따른 매출 저하 등이 ‘발 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말한다.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제로페이 결제를 많이 이용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제로페이 가맹점 등록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제로페이 참가 매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용자들이 신용카드 결제만 고집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로페이에 앞서 사업을 시작한 카카오페이 등도 업소에서 결제 이용률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신용카드 익숙한 이용자, 간편결제로 유도할 묘안 없어
제로페이는 결제 시 신용카드 대신 휴대폰의 결제 앱을 이용하는 간편결제 서비스다. 식사나 커피를 마실 때 매장의 QR키트(간편결제를 위한 안내판)에 휴대폰만 갖다대면 현금결제가 된다. 중국에서는 식당이나 마트, 심지어 노점상에서도 현금이나 신용카드보다 휴대폰으로 QR코드 결제를 하는게 보편화돼 있다.
그러나 국내 결제시장은 신용카드가 장악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의 총지출액중 약 70%가 신용카드로 결제되며 나머지가 체크카드, 현금 등이다. 특히 식당, 카페 등의 소액결제 비율은 현재 신용카드 이용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휴대폰을 이용한 간편결제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제로페이가 활성화되려면 신용카드 결제에서 휴대폰 간편결제로 갈아타는 이용자들이 대거 늘어야 한다. 문제는 ‘신용카드 의존도’ 패턴을 바꿀 묘책을 제로페이 사업 주체인 서울시가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간편결제’를 이용할 만한 혜택이 아직은 없다.
현재 서울시가 내놓은 단 하나의 혜택은 소득공제율 40%이다. 신용카드 15%, 체크카드 30%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신용카드 업계의 각종 할인혜택에 비추어볼 때 제로페이의 혜택은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이다. 카드 업계에서는 특정 카드 사용 시 20~30% 할인 등의 행사가 일반화돼 있다.
서울시측은 이에대해 "제로페이는 통장에 잔액이 있어야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절제된 소비를 유도하고 판매자에게 부담(결제수수료)을 전가하지 않는 ‘착한 소비’라는 점을 적극 홍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장사 안돼 매장 문 닫을 판인데 결제수수료 걱정 할 때 아니다"
장기 경기불황으로 소비가 극도로 위축돼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자영업 사정도 제로페이 사업을 펼치는데 걸림돌이다.
전국 최고의 상권인 서울 명동에만 폐업을 한 채로 비어 있는 매장이 현재 수십 곳에 달한다. 삼청동, 홍대입구 등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 역시 사정이 마찬가지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또 인상되는 내년에는 자영업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결제 수수료 문제는 한가한 걱정"이라는게 자영업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랜차이즈 본사 대표는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라는 가맹점주들이 많아 ‘제로페이 가입하라'는 얘기도 꺼내기 어렵다"며 "손님 자체가 절반 이하로 줄었는데, 결제수수료 인하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자영업자 대책 일환으로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크게 낮추기로 한 것도 제로페이 확산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당정회의를 열고 연매출 5억~10억원 자영업자에 적용되는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기존 2.05%에서 1.4%로, 10억~30억원 자영업자는 2.21%에서 1.6%로 인하하기로 했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카드 수수료 인하 혜택을 보게 된 만큼, 굳이 제로페이 사업에 참가해야 할 명분이 다소 약해진 것이다.
민간의 영역인 결제시장에 정부가 뛰어든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순 시장의 ‘대권행보'를 위한 치적 쌓기용 정책이라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악재를 딛고 제로페이가 안착하려면 서울시를 비롯한 사업 주체가 제로페이 이용자에 대한 보다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서울시는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용자가 늘어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며 "사업 초기에는 판매자들도 줄어드는 결제수수료를 고객에게 돌려주는 경품 이벤트를 하는 것도 모바일결제를 활성화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