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로 몰려다니며 범죄 저지르는 중학생들
"다른 애들도 했다"...책임 회피·죄의식 낮아
전문가 "훈육 안 통하는 일종의 '중2병'...악순환 지속"

지난 7월 19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여중생 A(15)양이 투신해 숨졌다. 유족은 "딸이 중·고교생 3명이 저지른 성폭력으로 인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투신한 이유도 바로 성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 7월 20일 인천 연수구에서도 여중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중학생들의 범죄가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집단 범행 △2차 가해 △범죄 무용담 공유라는 특징을 보인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입는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최근 벌어진 '중딩 범죄'를 분석했다.

①여럿이 범죄 저지른다
최근 '중딩 범행'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 범행'이라는 데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중학생들은 자아와 성의식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자신감이 결여돼 범행을 저지르지 못한다"며 "반면 여럿이 함께했을 때는 혼자 덮어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죄책감 없이 범행을 저지른다"고 분석했다.

여럿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해자들은 대부분 ‘남 탓’을 했다. 지난 2월 25일 인천 연수구의 한 노인정 화장실에서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C(13)양이 또래 남학생 2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도 그랬다. 이 중 한 명은 C양의 8년 친구였지만, 범행을 막기는커녕 다른 친구를 불러 함께 C양의 옷을 벗기도록 했다고 한다. C양은 5달 뒤인 7월 20일 목을 매 숨졌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남학생들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 ‘그렇게 나쁜 건지 몰랐다’라는 투로 건성건성 말하더라고요. 누가 주도했냐고 물어보면 서로 입을 다물다가도 ‘(C양이) 원래 소문이 안 좋았다’, ‘다른 친구랑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런 식으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②소문으로 피해자 '낙인'찍기
중학생 성범죄의 또 다른 특징으로 범행을 저지른 뒤 "피해자 행실이 원래 나빴다" 등 악성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자신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2차 가해다.

C양의 경우도 성폭행당한 이후 온라인 상에서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 10대가 많이 사용하는 문답형 소셜네트워크(SNS)에서 C양은 ‘나랑도 하자’ ‘가슴 보여달라’ ‘원래 그런 XX냐’ 등 온갖 성희롱에 시달린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가해자들이 낸 소문이었다고 한다.

"아이들끼리는 서브컬처(Sub-Culture·특정 집단의 독특한 문화)가 작용해 나쁜 행위인 줄 알면서도 피해자를 뒷담화를 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를 합니다. 소문을 안 좋게 내서 ‘쟤는 건드려도 괜찮아, 우리 잘못이 아니야’라며 합리화하는 것이죠. 이때 누구도 가해자들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배신한 사람’으로 찍히는 게 무서워서 비뚤어진 동지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죠." 오윤성 교수의 분석이다.

장시간 동안 2·3차 가해
피해자를 한 차례가 아닌 오랜 기간에 걸쳐 괴롭히는 것도 특징이다. 가해자만 10명이 넘었던 강원도 양구군 여중생 D양 성폭행 사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D양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20대 남성을 만났다가 성추행을 당했다. 이 소문이 인근 학교로 퍼졌고, 중·고교 남학생 11명은 이 사실을 약점 잡아 D양을 궁지에 몰았다. D양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남학생들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1년 동안 신고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피해자가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도 부탁하기도 했다는데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피해자가) 체념한 상태였다"며 "동네가 작고 가해자들끼리도 대부분 서로 모두 아는 사이여서 혼자 걱정하다가 부모님 주도로 신고해 수사가 시작됐다"고 했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달 15일 D양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중·고교 남학생 11명을 검거, 이 가운데 4명은 구속하고 7명은 불구속했다. 경찰은 "가해자들이 자백했고 검찰 송치한 상태"라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 사이에선 성폭력뿐만 아니라 따돌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먹잇감’ 사냥하듯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모습도 보인다"며 " 피해자가 의기소침해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저 ‘재미’로 여기며 멈추지 않아 범죄가 장기화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④이미 문제아로 찍혔던 가해자들
몰려다니며 범죄를 일으키는 중학생 중 주범은 대부분 학교나 가정에서 '문제아'로 찍혀 방치된 경우가 많았다. 어른들이 손쓰지 못할 정도가 돼 '포기'한 상태에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강력범죄로 입건된 14~18세 미성년자는 총 1만 3932명으로 성폭력 1만 920명(78.4%), 강도 2172명(15.6%), 방화 727명(5.2%), 살인 113명(0.8%) 순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대부분은 부모님과 대화시간이 극도로 적거나 학교를 장기간 결석하는 등 ‘비행 청소년’의 전조를 보였다.

최수형 한국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부모나 학교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공식적 낙인이 찍힌 학생들이 비행을 다시 저지르고,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과 다시 어울려 다니며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라며 "이들 중에선 준법정신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사실상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범죄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의무교육인 중학교 과정에서 준법정신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수정 교수는 "범죄를 저지른 학생은 대부분 자아 통제력이 낮고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어른들의 ‘감시’에서 벗어난 자유시간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며 "반강제적으로라도 또래보다는 부모나 선생님 등 ‘어른’들과 대화시간을 늘리거나 감시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오윤성 교수 역시 "중학교가 의무교육이라, ‘폭탄 돌리기’처럼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 문제"라며 "새로운 환경에 가더라도 준법정신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면 비행에 대한 우호적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