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8일간의 해외 순방에서 돌아왔지만 ‘체코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 가는 길에 굳이 ‘프라하의 하룻밤’을 왜 끼워 넣었느냐는 것이다.

통상 남미(南美)는 미국 LA를 거쳐 간다. 2만626km로 최단 거리다. 체코 프라하를 경유하면 2만828km다. 거리상 큰 차이가 없어 보여도 비행기가 맞바람을 받아 LA 경유보다 3시간 이상 더 걸린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남미를 유럽으로 돌아간 적은 없었다.

당초 청와대는 "체코에는 원전 세일즈를 위해 간다"고 설명했다. 언론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인 문 대통령의 모순적 행위만 지적했지만, 원전 관계자들은 이를 거의 '코미디'처럼 봤다. 왜냐하면 체코는 원전을 지을지 말지도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쯤 결론 날지 모른다. 원전 건설이 확정되지 않은 나라에 대통령이 원전 세일즈를 하러 가겠다니 표적 없이 허공에다 대포를 쏘아대는 격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해외 원전 수주에 열성적이었나. 불과 한 달 반 전 유럽에서 영국 총리를 만났을 때 문 대통령은 원전의 '원' 자도 안 꺼냈다. 거의 무르익었다가 현 정부에서 산통이 깨진 게 22조원 규모의 영국 원전 수주였다.

어쨌든 문 대통령은 원전 건설이 확정 안 된 체코의 총리 앞에서 원전 세일즈를 해야 했다. 만화 같은 재난 영화 '판도라'에 크게 감동하고 국민 안전을 위해 탈원전을 외쳤던 그가 "한국은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국내 원전 업계를 무너뜨리고 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어놓았을까.

그 직후 청와대에서는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주워 담느라 애썼다. 취재진에게 "앞으로는 '탈원전'이 아닌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는 표현으로 꼭 좀 써달라"고도 주문했다. "대통령은 행사 때마다 '탈원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현 정부에서 '탈원전'을 할 수가 없고 '에너지 전환 정책'을 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런 말장난이나 하는 청와대 참모는 지금 산업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일례로 그 전에 계획된 신한울 원전 3·4호기가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으로 백지화됐다. 이 원전들의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등을 제작하고 있던 두산중공업은 날벼락을 맞았다. 이로 인한 손실액만 4930억원이다. 정부가 보상해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산업통상자원부는 두산중공업 경영진에게 '떠들지 말라'고 입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정부에 감히 맞설 수 있겠나.

두산중공업은 원자력 부문 임원 3분의 1을 이미 줄였다. 직원 400여 명은 다른 계열사로 전출시키고, 내년 상반기에는 두 달간 유급 휴직 지원자를 받는다. '탈원전' 분위기에서 더 이상 국내외 원전 일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두산중공업보다 어쩌면 500여 협력업체가 먼저 무너질 것이다. 협력업체에 고용된 직원 수를 대략 계산해보면 3만 가구의 삶과 직결된다. 대통령이 대량 실업 사태를 만들고 있는데도 "탈원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는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체코 총리와의 1시간 회담에서 원전은 잠깐 언급됐다고 한다. 애초부터 회담 의제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체코 방문 목적이 모호해지자, 외교부가 나서서 "전용기의 중간 급유(給油) 때문"이라고 말을 바꿨다. 남미를 가려면 중간에 한 번 급유를 해야 한다. 하지만 LA가 아닌 체코를 경유하면 기름 35t(가격으로 약 2300만원)이 추가된다.

돈과 시간 낭비를 하고 더욱이 체코 대통령도 없는 시기에 왜 굳이 가야 했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문 대통령의 체력 관리를 위해 도중에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나라를 고르다가 마침 체코가 원전 계획도 있고 겸사해서…. 더 이상은 모른다."

청와대 공식 블로그에는 체코행에 대해 더 심증이 가는 답이 있다.

'비투스 성당 황금문은 원래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위해 체코 측에서 특별히 개방한 것입니다. 성당에 입장한 대통령은 곧바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성 바츨라프 채플에 들어가 설명 들으며 내부를 둘러봤습니다.'

이날 성당을 구경하던 김정숙 여사가 혼자 급히 뛰어나와 "우리 남편 어디 있나요?" 외치며 문 대통령의 팔짱을 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론 청와대 블로그에는 그 내용은 없다.

더 쓰지는 않겠다. 민간 기업의 직장인이 이런 식으로 업무 출장을 갔다면 징계 대상이 됐을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