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학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나의 세 번째 노트북은 사용한 지 5년이 되면서 동작이 둔해지고 가끔 작동을 멈추었다. 전문가에게 진단을 의뢰했더니 시스템을 모두 지우고 리셋(reset)할 것을 권했다. 끔찍한 선택이었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덕분에 성능은 나아졌다. 그 후 나는 노트북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정체 모를 사이트는 피해 다녔고 백신 프로그램은 이중으로 설치했으며 사용하지 않을 땐 전원을 꺼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갑자기 블루스크린이 떠서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소설을 어떻게 완성했고 어떤 소설을 포기했으며 얼마나 많이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는지 가장 잘 아는 게 그 녀석이니까. 전문가는 이번에도 윈도 재설치를 권했다. 6개월 후 또 한 번 리셋을 했다. 그때 나는 이게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감을 느꼈다. 3개월쯤 되자 녀석은 발버둥을 쳤다. 수시로 다운되고, 아무 때나 꺼졌으며, 어떤 날은 부팅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새 노트북을 정해야만 했다. 힘겹게 수명을 이어가던 녀석을 이용해 그를 대신 할 노트북을 찾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중요한 파일들을 외장 하드로 옮기는 중에도 녀석은 마지막 숨을 고르듯 수시로 다운과 리부팅을 반복했다. 나는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애원했다. 마침내 새 노트북이 도착해서 드라이버 설치와 인터넷 접속을 위한 모든 설정을 마친 순간 녀석이 갑자기 허망한 기계음을 토하더니 저절로 꺼졌다.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녀석은 가야 하는 순간을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었다.

기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다. 대부분 영혼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어떤 사물은 영혼과 유사한 뭔가를 갖고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우리 앞에 슬며시 드러내기도 한다. 나의 세 번째 반려 기계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