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빈민가에서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7세 때 쌍둥이 동생이 프로 복서로 데뷔하자 자신도 체육관에 등록하고 석 달 뒤 프로 테스트를 거쳐 프로 복서가 되었다. 목공소와 유리공장에서 일했다. 고졸(高卒) 학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건축계의 거장(巨匠)으로 우뚝 서며 도쿄대학 강단에 섰다. 안도 다다오(1941~)의 얘기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선 채로 책을 보다가 책더미 아래 숨기고 돌아섰다. 다음 날 서점을 찾았을 때 책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다시 책을 숨겼다. 다른 사람이 먼저 사갈까 봐. 안도는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그 책을 손에 넣었다.
현대미술에 흥미를 느껴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에 빠졌다. 스무 살 무렵 '구체미술협회'의 화가들과 어울렸다. "남 흉내를 내지 말라!"거나 "새로운 것을 해라!"라고 외치는 그들에게 자극을 받았다. 1980년쯤 한 소설가를 만났다. "자네가 안도군. 젊은 놈이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으면 글렀다고, 알아들었어!" 안도는 '전속력으로' 살았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안 보이던 게 보였다.
1965년 24세 때, 막노동을 하며 모은 돈을 털어서 유럽 순례에 나섰다. 파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를 찾았으나 못 만났다. 그는 안도가 파리 오기 한 달 전에 타계했다. 안도는 스페인·네덜란드·터키·그리스 등을 떠돌며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고, 미켈란젤로의 족적을 좇아 로마와 피렌체를 쏘다녔다.
서양 건축의 뿌리를 돌아보는 게 안도의 건축 수업이었다. 건축 현장에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고, 눈썰미와 몸의 감각으로 건축 문법을 익혔다. 핏속에 응축되고 혼융된 것이 영감으로 솟구쳤다. 안도가 설계한 '물의 교회'와 '빛의 교회'를 도판으로 접했을 때, 나는 그 창의적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안도는 고백한다. "여행 속에서 나는 건축가가 되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