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에 황토, 침대를 더하면? 머릿 속 상상을 해도 도무지 해괴한 모양만 그려진다. 피카소의 사람 얼굴 그림처럼 될 듯하다. 그런데 이 피카소의 그림은 미술사를 바꿔놨다. 이 엉뚱한 발상이 한국 침대의 역사를 새로 썼다. 세상에 없던 침대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흙침대'다. 부산 사상구 학장동 ㈜흙이 1991년 '흙침대'를 만들었다. ㈜흙 강무웅 회장은 "대학 시절 운동을 하다 허리를 다쳐 고향인 경남 고성에 내려가 따뜻한 황토 온돌방에서 허리를 지져 고친 적이 있었다"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흙침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침대 바닥 위에 황토를 깔고 다진 뒤 열선을 깔아 황토 온돌처럼 만들었다. 고향에서 황토를 가져와 써다 전국의 좋다는 흙이란 흙을 다 모아 그 중 가장 좋은 황토를 골라 침대를 만들었다. '흙표흙침대'라 이름 붙였다. 강 회장은 "산모가 황토 온돌방에서 삼칠일 동안 미역국을 먹으며 몸을 푼 뒤 거뜬히 일어나 집안일을 하던 우리 고유의 생활문화를 재현한 것"이라며 "당시엔 세계 어디에도 없던 침대였다"고 말했다.
처음엔 '설마'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고객들이 "써보니 좋더라"며 주변에 권하기도 하고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차츰 인기가 높아졌다. 1994년부터 생산시설을 자동화, 생산량을 늘렸다. 그러나 그 전에 없던 제품이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침대지만 가구는 아니고, 열선이 들어갔으나 전기매트도 아닌, 지금으로 말하면 '융복합 상품'이어서 곳곳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전기 합선 등으로 화재 우려가 있는 것 아니냐", "전자파가 나오는 것 아니냐"…. 이 우려와 싸우면서 제품 안전성을 더욱 높였다.
그동안 흙표흙침대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황토판 두께를 조절하고 열판과 흙판을 일체형으로 개발, 예로부터 내려온 온돌의 기능에 최대한 가깝도록했다. 흙판에서 양질의 원적외선을 많이 방출되도록 한 것이다. . ㈜흙 측은 "황토 구들에 장작불을 땐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일본 원적외선응용연구회로부터 원적외선 우수 판정을 받았다. 전력소비를 줄여 전기료 부담도 최소화했다.
요즘은 황토에 해조류를 고아 만든 풀과 당귀, 약쑥 같은 한약재를 빚어 넣어 방법 등으로 피톤치트, 산소를 만들어 내는 침대를 개발했다. 장판에 마와 송진가루, 꽃잎, 꽃가루 등을 넣어 아름다운 색을 내면서 건강에 더욱 좋도록 했다. 강 생산본부장은 "대부분의 공정에 황토, 꽃가루, 약쑥 등 천연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 침대의 특징"이라며 "우리 선조가 물려 준 문화유산인 황토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침대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침대 틀을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으로 바꾸고 색상도 그레이 톤으로 입히는 등 '침대 디자인'을 더욱 젊어지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디자인 멋진 현대형 침대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또 흙표흙침대 상표 로고와 전국 대리점의 간판들도 참신하게 교체 중이다. ㈜흙 정순영 홍보차장은 "20~30대의 요즘 젊은 층의 취향에 맞춰 브랜드 이미지를 보다 젊게, 참신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 초기, 연간 매출액 50여억원 가량이던 '흙표흙침대'는 그동안 매출액 4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전국 판매장도 20여개에서 100여개로 늘었다. 미국에도 진출, 연간 150여개의 침대와 매트 등을 수출하고 있다. 강 회장은 "갈수록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는 현재 추세와 서양식 주거 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의 취향을 겨냥,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우리 고유의 잠자리 문화을 지키면서 신세대 감각도 더해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국민 침대로 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