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함 포격·나포 사건이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 간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러시아의 행위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에 대(對)러시아 군사지원을 약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예정된 정상회담을 취소할 의사도 내비쳤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7일(현지 시각) 미국이 군사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전화통화에서 군사 지원 등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전면적인 도움을 약속했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영토 주권을 지지하고 우리 편에 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1월 27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예정된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난 회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나는 그런 침략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걸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가안보팀의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보고서가) 매우 결정적일 것"이라고 했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26일 성명을 내고 "미국은 러시아의 공격적인 행동을 규탄한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나포한 우크라이나 군함과 구금한 수병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 내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영해 보전을 존중해 달라고 촉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정상이 직접 대화할 필요성도 역설했다.

같은 날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우려를 표명한다"며 "미국은 러시아와 관계 정상화를 원하지만 이번 같은 불법적 행위들이 관계 정상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도 러시아의 행위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포 선박들의 신속한 반환을 촉구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공개적·직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군사력을 동원했다"며 "우리는 러시아의 이런 행위가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건 당일 포로셴코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도 "우크라이나의 영해 내 완전한 항해권을 포함, 우크라이나 영토와 주권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한다"고 전했다.

마자 코치잔치치 EU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즉시 나포한 군함과 수병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조나단 앨런 UN 주재 영국 차석대사도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합병한 크림반도에 대한 점유를 강화하려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는 러시아의 불법적인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간 4자 회담을 제안했다.

2018년 11월 25일 러시아 해군이 우크라이나 예인선과 군함 2척의 케르치해협 진입을 가로막고 포격·나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가 선거철을 앞두고 일부러 사건을 벌였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궁은 27일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사건을 해명하고, 독일 측에 우크라이나가 추가적으로 적대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게끔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통령궁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군함이 러시아 영해의 평화로운 항행을 위한 규정을 고의적으로 무시한 이번 행위에 대한 평가를 전달했다"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계엄령 선포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번 도발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대통령궁은 특히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선거 전략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내년 3월 31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해 민감한 크림반도 사안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르 그루슈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도 이날 독일 베를린 국제안보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의 목적은 내부 정치적 동기에서 상황을 최대한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러시아는 케르치해협에서의 자유로운 선박 통행권을 존중하지만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국경과 통행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측은 푸틴 대통령이 포로셴코 대통령과 접촉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해군은 25일 크림반도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군함 3척에 발포한 후 선박과 수병 20여명을 나포했다. "우크라이나 군함들이 불법적으로 러시아 영해를 진입한 뒤, 멈추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하게 기동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항해 계획을 러시아 측에 미리 통보했으며, 항해 계획 자체도 우크라이나 해상 안보를 위한 것으로 국제법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30일간의 계엄령을 선포했다.

충돌이 빚어진 케르치해협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 모두 군사적으로 중요한 핵심 수로(水路)다. 양국은 2003년 협정을 맺고 이 수역을 공동 영해로 규정했으나,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후 사실상 영유권을 행사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2018년 11월 27일 러시아 국영TV를 통해 공개한 나포된 우크라이나 수병의 영상. 이 수병은 영상에서 우크라이나 군함이 러시아 영해를 무단으로 진입한 책임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군함 포격·나포 사건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인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법원이 나포된 우크라이나 수병 24명 가운데 3명의 구속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심페로폴 법원은 27일 수병들에 대한 첫번째 영장실질심사에서 블라디미르 바리메즈(26) 등 3명에게 ‘집단 무단 월경’ 혐의를 적용하고 내년 1월 25일까지 2개월간의 구속을 명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날 러시아 국영TV를 통해 나포된 우크라이나 수병들이 러시아 영해 무단 진입을 인정하는 영상 3개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성명을 통해 "수병들이 압력과 고문 협박을 받고 진술한 것"이라며 영상 속 증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