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화재 이재민 56% 임대주택 거부
대부분 일용직 "거기살면 인력시장 못가"
"공무원 편한 대로 마련한 탁상공론" 지적
7명 사망자가 발생한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거주자 56%(18명)가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 입주를 거부한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임대주택 6개월 제공’은 거주자들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 탁상공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좁은 방에 누우면 벽을 타고 꿈틀거리던 불꽃, 죽은 옆방 사람 얼굴이 떠오르지만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에 따라 고시원 화재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거주자 32명에 대해 임대주택을 6개월 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가 제시한 임대주택의 주거여건은 '쪽방 고시원'보다 훨씬 낫다. 고시원과 달리 면적이 14~49㎡(약 4~15평)로 넓고, 주택 내에 화장실도 붙어 있다. 임대주택을 이용하는 국일 고시원 거주자는 보증금 없이 임대료만 지불하면 된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임대료는 매달 3만~40만원까지로 다양하다.
종로구청은 지난 23일까지 국일고시원 거주자를 대상으로 임대주택 입주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절반 이상(18명)이 임대주택 입주를 거부했다. 임대주택에 가져갈 가구, 전자제품 등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국일고시원 3층에 거주했던 이모(63)씨는 "이 추운 겨울에 텅 빈 방에 들어가려면 이불이라도 한 장 마련해야 할 텐데, 임대료까지 별도로 지불할 형편이 안 된다"며 "위험하더라도 (임대주택 대신) 다른 고시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리적 요소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일고시원 거주자 대다수는 40~60대 일용직 근로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재민에게 제시한 임대주택은 '인력 시장'과 거리가 떨어진 은평구, 성북구, 중랑구 등에 집중되어 있다.
국일고시원 입주자들은 종로, 서울역의 인력 사무소에 나가기 위해 대부분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은평, 중랑, 성북 등지에서 인력사무소까지 가려면 새벽 첫 차를 타고 30분 이상 와야 한다. 월 10만원 안팎의 적지 않은 교통비가 드는데다, 자칫 늦으면 일감을 구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
국일고시원 거주자 정모(40)씨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입장이라, 건설현장과 멀리 떨어진 지역의 임대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고, 또 다른 거주자 조모(40)씨도 "우리 사정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무원들이 일 처리하기 편한 대로 이주대책을 짠 것 같다"고 말했다.
입주신청을 낸 14명 가운데 일부도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모(63)씨는 "급한 대로 임대주택 입주를 신청했지만, 실제로 들어가서 살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임대료, 이사비용, 가재도구 구매비용까지 충당하기는 부담이 지나치게 커요. 저 같은 사람에게 임대주택은 ‘빛 좋은 개살구’ 아니면 ‘그림의 떡’입니다."
화재가 벌어지기 전까지 일용직 근로자 사이에서 국일고시원은 인기가 높았다. 하루에 7가지 찬을 제공하는 ‘뷔페식’ 덕분이다. 월세는 월 27~38만원 수준. 서울 지하철 1·2호선 역세권이라, 입주자들이 종로3가나 서울역 주변 인력사무소에서 일감을 따내기에도 좋았다.
종로구청 측은 "임대주택 입주를 거부한 거주자들이 있지만,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고, 국토부 관계자도 "이재민들이 원하는 것처럼 도심에 가까운 임대주택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일고시원 거주자들은 화재 당시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생존했다. 당시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생존자 일부는 화재가 벌어진 지 20여일이 지난 지금도 기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