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칸디나비아 누아르: 한국 작가들이 스릴러 장르를 재창조하고 있다."
올해 초 영국 가디언지는 이 같은 제목으로 "김언수의 책 '설계자들'이 치열한 판권 경쟁 끝에 1억원 넘는 선인세를 받고 미국 더블데이 출판사에 팔렸다"고 보도했다. '설계자들'은 지금까지 22개국에 번역 판권이 팔렸다. 가디언은 김언수와 정유정을 언급하며 "미스터리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했다. "영화 '올드보이'를 본다면 한국 스릴러의 성공은 그리 놀랍지 않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설계자들'(2010)은 살인을 의뢰받고 시나리오를 짜는 설계자, 실행에 옮기는 암살자, 시체 처리업자들이 우글대는 어두운 세계를 그린다. 대놓고 납치와 고문을 자행한 군부 독재 시기가 끝나고 청부 살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설정이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언수(46·사진)는 '설계자들'로 2016년 프랑스 추리문학대상 후보에 올랐다. 최근 스웨덴 예테보리·독일 프랑크푸르트·프랑스 브리브 도서전까지 참가하고 귀국한 그를 만났다.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
"요즘엔 한국 번역가와 글 잘 쓰는 원어민이 팀을 이뤄 번역한다. 문학 수출 전문 에이전시도 생겼다. 프랑스 도서전에서는 한국 작가라고 하니 '방탄소년단의 나라'라며 내 책을 20권이나 사갔다. 문학이 무시했던 드라마나 영화, 대중가요가 한국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있다."
―드라마·영화에 비해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부진한 이유는 뭘까.
"신춘문예부터 주요 문학상까지 지나치게 단편 중심이다. 작가들은 등단하기 전까지 20대 내내 단편만 쓴다. 반면 전 세계 독자나 해외 출판 시장은 장편을 선호한다."
―언제부터 장편을 썼나.
"서른두 살에 처음 장편을 썼다. 처음엔 너무 못 써서 고시원에서 펑펑 울었다. 단편이 100m 달리기라면 장편은 마라톤이었다. 필요한 근육이 달랐다. '설계자들'을 쓰기까지 10년 동안 11개 장편을 썼는데 전부 쓰레기통으로 갔다."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문학은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못난 인생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국내 문학엔 서사가 부족하다. 몇십 년 글을 쓴 내가 읽어도 이해 안 되는 어려운 문학을 내놓으면서 '독자가 무식하다'고 한다. 좋은 소설은 동네 할머니가 보고도 감동해 울 수 있는 소설이다."
―'설계자들'에선 살인자, '뜨거운 피'에선 건달을 다뤘다. 밑바닥 인생을 그리는 이유는?
"내가 밑바닥 인생이라 그렇다. 부산 피란촌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원래부터 살고 있었는데 피란민들이 와서 피란촌이 됐다. 사창가도 있고 건달도 많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일들이 실제 우리 동네에서 벌어졌다."
―차기작은 어떤 내용인가.
"한국 어부들에 관한 이야기다. 취재를 위해 6개월 동안 원양어선을 타고 왔다. 16시간씩 노동하면서 쪽방만 한 공간에 20명이 엉켜서 잠잔다. 이들이 독일 광부 못지않게 외화를 벌어들였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더라. 바다에는 매 순간 사람이 죽을 이유가 1000가지쯤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