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이 왜 이 지경까지 됐을까."

'IBK기업은행 2018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가 개막한 21일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체육관. 경기장을 둘러보던 씨름인들의 장탄식이 절로 나왔다. 개막식과 태백장사(80㎏ 이하)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었지만, 6600석을 수용하는 체육관 입장객은 400명에 불과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700명)가 관중보다 많았다.

대부분 60~70대 남성인 팬들이 간혹 선수들 이름을 호명하면서 '코치'를 하면 심판이 제지하는 모습도 보였다. 결승에서 김진용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지른 이완수(창원시청)의 고함이 팬들의 박수 소리보다 더 커 보였다.

"이만기·이준희·이봉걸·강호동·이태현은 알아도 지금 천하장사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썰렁한 관중석 - 21일 ‘2018 IBK기업은행 천하장사 씨름대축제’가 열린 안동체육관엔 6600석 좌석에 약 400명의 관람객만 입장한 가운데 개막식과 태백장사 결승전이 열렸다. 1980~1990년대 인기 절정을 누렸던 씨름의 몰락은 한순간이었다. 사진은 썰렁한 경기장서 태백장사급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

이날 체육관을 찾은 김영길(79)씨는 "우리 땐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씨름을 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농구·배구하지 씨름에 흥을 느끼겠나"며 "50년 넘는 씨름 팬이지만 세상이 달라진 것을 씨름인만 모르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씨름은 1983년 민속프로씨름 개막과 함께 전 국민을 열광시켰다. 이만기·이준희·이봉걸·강호동·김정필·이태현·최홍만 등 스타 선수들이 이어 등장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전국 곳곳을 돌며 열린 대회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관중이 가득 찼다. 입장하지 못한 팬들이 돌아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만기가 멋진 기술로 자신보다 큰 선수를 모래밭에 쓰러뜨릴 땐 체육관이 흔들거릴 정도로 함성이 대단했다.

하지만 씨름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 신세가 됐다. 기술 씨름, 공격 씨름이 아니라 체중 무거운 선수들이 모래판에서 지루한 힘겨루기 승부를 펼치는 모습이 되풀이되면서 팬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대회가 열려도 관중은 외면했고, 중계도 없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프로씨름단이 하나둘 해체된 게 씨름계엔 치명타가 됐다. 이종 격투기가 등장하면서 젊은 층의 관심도 급속히 그쪽으로 옮겨갔다. 한 씨름 관계자는 "지금은 서울 대회는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고, 그나마 지방에서 대회를 연다고 해야 후원이나 TV 중계가 따라붙는다"고 했다.

왕년의 스타들 “씨름 다시 살릴게요” - 왼쪽부터 천하장사 출신 이준희, 이태현, 이봉걸. 씨름 부활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마침 21일 안동체육관엔 이준희·이봉걸·이태현 등 당대를 풍미했던 천하장사들이 현장에 있었다. 이준희 씨름협회 경기운영본부장은 "씨름이 옛 인기를 되찾으려면 이만기·강호동처럼 씨름도 잘하고 관중을 확 휘어잡을 제스처나 퍼포먼스를 펼칠 수퍼 스타가 등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현 현 용인대 격기지도학과 교수는 "일본 스모도 몰락했다가 명성을 되찾은 이유가 공기업이 나서 스모를 관광 상품화하고 협회가 스모를 이벤트화하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들면서였다"며 "팬과 소통하지 않으면 진짜 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절박함을 느낀 대한씨름협회는 최근 경기 규칙과 운영 개선을 통해 변화를 택했다. 백두급 체중을 150㎏에서 140㎏, 한라급은 110㎏에서 105㎏으로 조정하며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유도하고 있다.

씨름 관계자들은 "조만간 씨름이 남북한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 그를 계기로 2020년 프로화(민속리그)를 재추진하고, 스포츠토토 사업에도 합류해 수익을 창출하는 등 '되치기'를 한번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