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직후인 지난 9월 27일 새벽 2시 17분쯤, 서울 영등포 유통상가 사거리를 운행하던 택시기사 강웅원(59)씨는 이상한 차량 한 대를 발견했다. 택시 앞에 정차한 검은색 SUV였다. 푸른색 신호로 바뀌었는데도 앞의 차량은 한참이나 출발하지 않았다. 강씨는 택시에서 내려 앞 차량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운전대 밑에 휴지가 수북했고, 운전자는 맨 살 위에 재킷만 걸쳤습니다. 이거 위험하다 싶었어요."

지난 9월 27일 오전 2시 21분쯤 영등포 유통상가 사거리 일대에서 검은색 쉐보레 올란도 차량이 인도에 진입해 달리는 모습.

‘검은 차량’은 강씨가 다가오자 돌연 돌진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동시에 강씨가 뒤쫓았다. ‘한밤 추격전’은 영등포로터리에서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까지 약 5km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검은 차량 운전자는 고의적으로 급정거, 급발진을 했다. 두 개 차선에 걸쳐서 질주하기도 했다.

강씨는 자신의 택시로 그 앞을 막아 섰다. 운전을 막기 위해 다가가자, 검은 차량은 그대로 강씨 쪽으로 돌진했다.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강씨는 무릎에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검은 차량은 중앙선을 넘어서 역(逆)주행하기 시작했다. 인도(人道)에 진입하기도 했다. 새벽운동을 하던 시민들이 놀라서 대피했다.

오전 2시 23분쯤, 신고를 받은 지 6분 만에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검은 차량은 운전석에 경찰관을 매단 채로 10m 가량을 끌고 갔다. 동료 경찰들이 모두 달려들어서야 운전자가 체포됐다.

그는 이미 눈이 풀린 상태였다. 처음에는 음주운전을 의심했다. 그러나 혈중알코올농도가 측정되지 않았다. 경찰서로 이송 후 가족에게 연락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 아들은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입니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이후에도 검은 차량 운전자 오모(41)씨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누가 칼로 내 손목을 그었어요?" "택시기사가 갑자기 (나를) 죽이려고 했어요"라고 진술하는 식이었다. 경찰은 오씨를 구속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오씨는 풀려났다. 오씨의 정신병원 치료병력이 감형 사유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경찰들은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 관계자는 "(조현병 환자가 운전하는 차량은) 자칫 살상무기가 될 수 있다"면서 "현장에서 ‘조현병 운전자’ 관리가 더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는 ‘자기신고제도’를 거쳐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돼있다. 의사소견서를 통해 환자가 과거부터 꾸준히 치료받았다는 점을 증명하면, 판정위원회가 신고자가 운전할 수 있는 정도인지 판단한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가 먼저 신고하지 않는다면, 교통당국이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다. 스스로 조현병 환자임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도로교통공단 측은 ‘자기신고제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도로교통공단 면허민원처 관계자는 "조현병으로 인한 사고 사례는 접해본 적이 없다"며 "자기신고제는 다른 다른 나라에서도 광범위하게 쓰는 제도로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