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생기는 순간 첫아이에게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지위를 뺏긴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지만 점차 동생을 받아들이면서 책임감과 배려심이 길러지지요."

김영훈(59) 가톨릭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최근 3년간 형제 서열에 따른 성격 차이와 둘째 아이 뇌의 특성을 연구해 내린 결론이다. 그는 올여름 그동안 연구한 결과를 모아 '둘째는 다르다'는 책을 펴냈다. 그는 소아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며 언어 장애,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틱 장애, 소아 우울증 등을 앓는 아이들을 치료해왔다. "아이 정서가 불안한데, 동생이 생기면 좀 괜찮아지느냐"고 묻는 부모를 수없이 만났다. 자신도 1남 1녀를 키웠다.

둘째가 부모를 바꾼다

올해 우리나라는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이 0.9명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전쟁·쿠데타 같은 특수한 사건도 없는데 출산율이 이 정도로 떨어진 곳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12일 김 교수에게 "둘째는커녕 첫째도 안 낳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왜 '둘째' 책을 냈느냐"고 묻자, 그는 "육아가 주는 온전한 행복은 둘째부터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첫아이를 키울 때는 부모가 실수라도 할까 전전긍긍합니다. 육아서에서 본 대로, 시행착오 없이 아이를 키우려고 하죠. 아이가 주는 행복이 크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작지 않아요. 그런데 둘째 아이를 낳으면 부모의 양육 태도가 변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하고 용인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아이도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크지요." 부모의 안정감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둘째 아이가 첫째보다 협상력과 문제 해결력이 좋고 개방적 경향을 보이는 이유다. 그는 "첫째보다 둘째가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재상에 가깝다"고 했다.

첫째가 달라진다

부모뿐 아니다. 첫째도 의젓해진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자동으로' 생기는 건 아니다. 동생이 태어나서 생기는 장점, 둘째로 태어나서 생기는 장점은 결국 부모가 만드는 거라고 한다. 김 교수는 "부모가 형제끼리 비교하거나 동생이 갑자기 생긴 첫째의 박탈감을 보듬어주지 않으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형제끼리 지나치게 경쟁심을 자극하거나 비교하는 말은 금물"이라고 했다. 부모가 무심코 '누가 장난감 잘 치우는지 보자' 한 말에 첫째는 늘 이겨야 한다는 강박을, 둘째는 열등감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대신 "함께 임무를 완수하는 일이나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협동심을 길러주라"고 했다. '서로 도와 장난감을 정리해볼까?' 하고 말하는 식이다.

첫째가 질투할 땐 "너도 아기였을 때가 있었어" 하며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둘째를 임신 중일 때 첫째를 초음파 검사 하는 데 데려다 동생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첫째에게 동생을 함부로 맡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첫째도 여전히 아이인데 형이라는 이유로 의젓함을 강요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 역시 방향을 조금 틀면 도움이 된다. "동생 기저귀 좀 가져다 줄래?" 식으로 첫째가 부모가 하는 육아에 자연스레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김 교수는 "둘째 낳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지레 겁을 먹고 엄두를 못 내는 부모가 많다"고 했다. "사실 장벽이 참 높죠. 결혼이 늦어지니 일단 산모 나이가 걸리고, 경제적 부담도 무시 못 합니다. 그런데도 둘째를 낳는 사람들이 누군가 가만히 보니, 남편이 첫째 아이 육아에 적극적이었던 집은 결국 둘째 아이도 가지더라고요. 첫째 키우면서 '독박 육아'를 안 해야 둘째를 갖습니다."

둘째 연구를 하면서 김 교수는 저출산 현상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하나 더 낳고 싶어도 생활이 어려워질까 봐 망설이는 부모를 많이 봤어요. 정부의 다둥이 혜택은 대개 셋째부터 받죠. 엄마들은 첫아이 키우다가 다시 육아휴직 쓰려니 경력 끊길까 걱정하게 마련이고요. 앞으로 '둘째 장벽'을 어떻게 없애나가느냐가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