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500쪽|1만5800원

소설가 조지 손더스가 1990년대 워싱턴 D.C.를 방문했을 때, 누군가 오크힐 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셋째 아들 윌리가 세상을 떠나 저 묘지에 임시 안장되었을 때, 슬픔에 빠진 링컨이 아이의 시체를 끌어안기 위해 묘지의 지하 묘소에 몇 번이나 들어갔다고 해요."

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손더스의 마음에 떠올랐다. 링컨 기념관의 링컨 좌상과, 숨진 예수를 성모 마리아가 끌어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결합된 이미지. 그 이미지로 소설을 써 보고 싶었지만 너무나 심오해 차마 시작할 수 없었다. 마침내 펜을 든 건 2012년,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였다. 손더스의 첫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은 그 결과물이다. 소설은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2017년 맨부커상을 거머쥐었다. '바르도'란 티베트 불교에서 죽음과 환생 사이에 있는 중간계. 이승에서의 삶에 미련이 많은 영혼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곳의 영혼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더스는 티푸스로 숨진 윌리 링컨이 매장된 날 밤인 1862년 2월 25일을 시간적 배경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몇 번이나 아들을 보러 묘지로 향하는 링컨 대통령과,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환생하지 않고 바르도에 머물고 있는 윌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재는 독특하지만 스토리는 단순하다.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하는 영혼과 그 영혼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승 가족 간의 눈물겨운 어긋남, 마침내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는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이야기에 우리는 이미 익숙하다.

워싱턴 링컨 기념관의 링컨 좌상. 링컨이 아들 윌리의 시신을 부둥켜안았다는 일화를 들은 소설가 조지 손더스는 이 좌상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결합된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에 영감을 받아 '바르도의 링컨'을 쓴다. 오른쪽 사진은 생전의 윌리.

소설에서 돋보이는 건 파격적인 형식이다. 500쪽 분량의 이 책에 단순 서술은 없다. 바르도 내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바르도를 떠도는 수많은 영혼의 입을 통해 연극 대사처럼 전해진다. 이를테면 '어린아이는 바르도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규약을 어기고 바르도에 남아 아버지를 기다리겠다는 윌리의 의지는 자살한 동성애자 '로저 배빈스 3세'의 말을 통해 독자에게 와 닿는다. "아버지가 약속했어요, 소년이 말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와서 제가 사라진 걸 알면 어떻게 해요?"

바르도 밖 링컨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책, 서간문, 신문 기사 등 실제 사료나 저자가 만들어낸 자료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전달된다. "코가 남들보다 지나치게 큰 편은 아니었으나, 여윈 얼굴 때문에 커 보였다. -에드워드 J. 켐프, '에이브러햄 링컨의 상식 철학'-."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떠들어대며 독자의 머릿속에 윙윙거리는 메아리를 남긴다. 그리스 희곡의 코러스를 연상시키는 이 독특한 형식 체험, '소설이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 하는 경계의 확장이 어쩌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규약을 어긴 벌로 딱딱하게 굳어가는 윌리를 구하기 위해 영혼들이 합심해 윌리가 링컨에게 빙의하는 걸 돕는 부분. 아버지 안으로 들어간 윌리는 외친다. "여러분, 우리는 죽었어요!" 깨달음을 얻은 영혼들은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대부분 바르도를 떠나지만, 흑인 노예 토머스 헤이븐스의 영혼은 그대로 남아 링컨 안에 들어가 속삭인다. "선생님, 선생님이 내가 느끼는 만큼 강력한 분이라면, 그리고 지금 보이는 만큼 우리를 향해 기울어 있다면, 우리를 위해 뭔가 하도록 노력하세요. 우리 스스로도 뭔가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남북전쟁이 큰 사상자를 낸 직후라 사상자 부모들의 원망을 한몸에 받고 있던 이 '아버지'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승화시키고 '흑인 노예의 아버지'로 거듭나 말을 달려가는 한밤중의 장면에서 우리는 손더스가 붙들고 있던 이미지, 즉 링컨과 피에타가 결합하는 이미지와 만난다. 아들을 잃은 비통함을 전인류로 확장시킨 성모의 마음이 링컨의 슬픔과 공명한다.

"그의 마음은 새삼스럽게 슬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하다는 사실, 모두가 어떤 슬픔의 짐을 지고 노동한다는 사실, …따라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