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이닝을 던져야 하는 건가요?”

SK 에이스 김광현(30)은 한국시리즈를 시작할 당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4차전 선발로 내정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이 호투의 기준이냐는 것이다. “김광현이니 7이닝 정도는 던져야 한다”는 농담이 나오자 김광현은 “알았다. 잘 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평소 발언이 겸손하고 상대를 자극하는 멘트가 없는 김광현의 화법을 생각할 때 약간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김광현은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 등판했으나 모두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1차전에서는 6이닝 5실점, 2차전에서는 5⅔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전력투구했지만 실점을 막지는 못했다. 2경기 평균자책점은 6.17이었다. 김광현은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안도하면서도 내심 이 부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 정도 성적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에 더 그랬다.

이를 만회하고자 한국시리즈를 벼르고 있었던 김광현이 “잘 던지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김광현은 9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6이닝 동안 90개의 공을 던지며 6개의 안타를 맞기는 했으나 모두 산발 처리하며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사사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투구였다. 팀이 1-2로 역전패해 빛이 바래긴 했지만 김광현의 투구 자체는 흠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날 상대 선발도 두산 에이스인 조쉬 린드블럼이었다. 초반 기 싸움이 중요했는데 올 시즌 최고 투수를 상대로 김광현이 전혀 밀리지 않았다. 시작부터 빠른 공과 슬라이더로 두산 타선과 정면으로 맞선 김광현은 맞혀 잡는 피칭까지 가미하며 효과적으로 이닝을 소화해냈다.

1회 박승욱의 실책이 빌미가 된 2사 2,3루 위기에서는 김재호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내고 위기를 넘겼다. 박승욱이 느낄 마음의 짐까지 지워낸 투구였다. 3회 2사 후 연속 안타를 맞고 위기에 몰렸을 때는 두산 핵심타자인 양의지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팀의 기를 살렸다.

1-0으로 앞선 6회에는 선두 최주환에게 중전안타를 맞았지만, 양의지를 유격수 방면 병살타로 처리하고 포효했다. 이 병살타 하나에 6회 결과는 물론 덕아웃과 관중석 분위기까지 확 달라졌다. 에이스는 팀의 기세를 어떻게 살리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지키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11년 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역투를 펼치며 혜성처럼 등장한 김광현은 6년 만의 한국시리즈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으로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7이닝을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실점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에 버금가는 역투였다. 팀의 1-2 역전패가 딱 하나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인천=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