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熱氣가 얼굴 덮쳐 순식간에 정신 잃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연기가 가득했다"
"창틀 잡고 뛰어내려…두려움이 없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수표교 인근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화재가 고시원 건물 3층 출입구 부근에서 발생한 탓에 사상자들은 제대로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긴박했던 그 순간의 증언들을 싣는다.

9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국일고시원 327호 거주자 이춘산(63)씨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복도와 온 벽에 불길이 솟구쳤다. 열기(熱氣)가 얼굴을 덮쳤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방문을 닫았다. 영화인 줄 알았다. 얼굴이 뜨거워 실제 상황이란 걸 깨닫겠더라. 이내 '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방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20~30초 정도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창문으로 향했다. 모기장을 뜯고 바깥으로 머리를 내미니 그제야 숨통이 트여 살 수 있겠더라. 창문 밖 배관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국일고시원 326호 거주자 A(58)씨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눈을 떴는데, 방 안에 연기가 가득했다. 당황하면서 '내 방에서 불이 났나' 싶어 둘러봤는데 불이 난 곳은 없었다. 방문을 열었더니 복도에 연기가 가득했다. 걸어서는 못 내려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일단 창밖으로 목을 빼고 창문 밖으로 탈출하려고 했다. 창문 밖으로 몸을 뺀 뒤 위로 올라갈까 했는데, 너무 멀더라.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3층이라 너무 높았다. 조금씩 내려가려고 오른손을 움직인 순간 창틀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쳤다. 비가 와서 그런지 창틀이 미끄러웠다. 바닥으로 등부터 떨어졌다. 뒤로 떨어지는데 무슨 생각이 들겠나. 그때는 아픈지도 몰랐다."

국일고시원 3층 거주자 김모(59)씨
"우왕좌왕 하는 소리가 나서 깼다. 메케한 연기 냄새가 심했다. 문이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겁이 나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고 했는데, 창문이 이미 뜨거워 창틀을 잡은 손에 화상을 입었다. 비가 내려 창틀에 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물을 코에 묻히니 조금 살 것 같았다. 파이프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나 말고 6명 정도 부상자가 있는 게 보였다."

9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국일고시원 2층 거주자 정모(40)씨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불이야' 소리가 났다.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다. 휴대전화를 보니 오전 5시였다. 서둘러 옷을 입고 1층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고시원 복도가 좁다. 건물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복도에 몰려 아비규환이었다. 3층에선 거주자들이 창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하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2명이 창틀에 매달려 있다가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봤다. 화재 비상벨이 고장 났다고 들었다. 하필 이때…"

국일고시원 2층 거주자 김모(41)씨
"잠을 뒤척여 새벽에 잠시 깼다. 창밖에서 갑자기 고함이 들렸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났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 방문을 열었다. 복도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불이야'라는 고함이 들렸다. 건물 출구로 뛰어나가 고시원을 바라보니 위층(3층)에서 붉은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다."

국일고시원 205호 거주자 박모(56)씨
"'불 났다'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잠깐 나선다는 생각으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사망 사고가 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방염처리가 된 벽이나 커튼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가격이 비싸지 않겠나. 이런 고시원 대부분 영세사업주들이 하기 때문에 대부분 가장 싸구려로 한다. 화재에 취약하다. 건물도 낡고… 그나마 나는 2층에 살아서 바로 나왔으니까 어안만 벙벙했지 3층은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거주자들이 종로1·2·3·4가동 주민센터 3층 강당에 대피해 있다.

국일고시원 2층 거주자 김모(58)씨
"화재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 비명만 들렸다. 방안에서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데 슬리퍼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냅다 뛰었다. 지갑과 소지품도 당연히 못 가지고 나왔다. 그나마 2층은 불이 번지지 않았다."

국일고시원 220호 거주자 김모(62)씨
"공사 작업을 하러 가려고 일어난 상태였다. 갑자기 불이 났다는 말이 들리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는 2층인데도 마음이 급해서 바지만 입고 일단 나왔다. 220호라 가장 안쪽이었다. 3층에 나랑 같은 쪽에 있던 사람은 어땠을까… 2층만 해도 연기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