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2편 함께 찍은 '세기의 톱스타 커플'…4년 뒤 결혼
1975년부터 별거…외도 사실 공개했지만 이혼은 안 해
엄앵란 '애증의 마지막 말'…"저승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라"
함께 찍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맨발의 청춘'
신성일, 임종 때 "(엄마에게)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

"대문 밖의 남자지, 집안의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엄앵란(82)은 4일 새벽 세상을 떠난 남편 신성일(81·본명 강신성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러면서 "존경할만한 남자여서 55년을 살았다"라고 했다.

고(故) 신성일의 부인 엄앵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50분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엄앵란은 "3일 전 (전남대)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고인을) 봤다"고 했다.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를 진단받아 투병 생활을 해 왔다. 지난달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가해 레드카펫을 밟았다. 당시 건강이 호전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왜 투병 중에도 부산까지 가서 레드카펫을 밟았을까? 엄앵란은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남편이) 돌아가셨다고 소문이 나서, (고인이) ‘아파도 가서 (모습을) 보여줘야지, 사람들이 실망한다’라면서 (영화제에) 갔다 왔다. 그 다음에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을 만나 고(故) 신성일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고 있는 엄앵란의 뒤로 고인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저승에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라"
엄앵란은 남편에 대해 "아픈 와중에도 마지막 작품을 남기려고 의지를 보였다. 우리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라며 "이런 사람이 버티고 있어서 오늘날 한국 영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엄앵란은 "(남편은) 대문 밖의 남자지, 집 안의 남자 아니었다"라며 "일에 미쳐서 집은 나한테 맡겼다. 그래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시절에도 수입을 올리고 히트작이 가능했던 이유"라고 했다. 그리곤 "(인생) 늘그막에 (둘이서) 재미있게 살려고 했는데…내 팔자가 그렇다"라고 말하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인의 임종은 차녀 강수화(48)씨가 지켰다. 수화씨가 "어머니(엄앵란)에게 할 말 없느냐"고 묻자, 고인은 "참 수고했고, 고맙다. 미안하다고 전해줘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앵란은 "딸(수화씨)이 ‘아버지 재산 뭐 있어’라고 물었더니 ‘재산 없다’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대화가 재미있는 듯 엄앵란은 "웃으면 안 되는데 하여튼 그랬다더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엄앵란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우리 남편은 저승에 가서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지내라. 거기서 무슨 교통비가 들겠나…구름 타고 놀러 다니시라"고 했다. 처음 만난 해로부터 59년, 백년가약을 맺은 지 55년 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남기는 ‘애증의 마지막 말’에 기자들도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놓인 고(故) 신성일의 영정사진.

◇"신성일은 동지, 멋있게 죽어야"…부부의 58년 인연
엄앵란은 빈소 앞에서 "'우리는 동지야 동지'라고 했다. "영화하는 동지! 우리는 끝까지 전진해야 돼! (부부의 이혼설 등) 이상한 소리가 나오면 그렇게 대응했다." 엄앵란이 약 10분간 남편을 추억하며 말한 것 중 가장 힘을 주어 말한 부분이었다.

엄앵란과 고인은 1960년 ‘로맨스 빠빠’에 함께 출연하면서 처음 만났다. 고인과 엄앵란은 이 영화를 시작으로 52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엄앵란은 "같이 연기한 작품 중 ‘맨발의 청춘’(1964년 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가 흥행이 잘 됐고, (극 중) 역할도 남편이 참 잘 했다"고 했다.

첫 만남으로부터 4년 뒤인 1964년, 당대의 남·녀 톱스타였던 두 사람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하객과 시민 4000여명이 모였다. 그러나 11년 뒤인 1975년부터 생활 습관 차이를 이유로 별거에 들어갔다. 별거 이유엔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도 있었다고 한다. 고인은 오전 6시 잡곡밥에 싱거운 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했지만, 엄앵란은 낮 12시에 쌀밥과 짠 반찬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고인은 ‘영화배우는 몸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체력단련실에서 꾸준히 운동을 했지만, 엄앵란은 운동을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고(故) 신성일과 엄앵란, 그리고 부부의 딸 강수화씨(사진 오른쪽부터).

고인은 2011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자신이 외도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부부는 이혼하지 않았다. 엄앵란은 2011년 12월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 아침’에 출연, "(사람들이) 심심하면 이혼했다고 한다. 신문에서 언급한 대로 이혼했으면 50번은 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있고 저렇게 사는 것도 있지 어떻게 교과서적으로 사느냐. 악착같이 죽을 때까지 (신성일과) 살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식. 이날 엄앵란이 입은 웨딩드레스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작품이다.

엄앵란은 2016년 유방암에 걸려 부분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자 오랜 기간 집을 나가 있던 신성일이 돌아와 엄앵란을 간호했다. 수화씨는 방송에서 "현재도 각자 생활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별거 아닌 별거’가 됐다"고 했다.

고인이 지난해 6월 폐암 선고를 받던 날, 엄앵란은 수천만원의 병원비를 부담하면서 수화씨에게 "내 남편이니까, 난 그걸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동지야. 끝까지 멋있게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엄앵란)가 먹여 살려야 하고, 죽을 때까지 VVIP 특실에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시는 것 나는 못 본다"는 것이다. ‘동지’라는 표현엔 사랑과 원망, 슬픔, 연민 등을 함축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MBC에서 방송한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수화씨가 밝힌 내용이다.

수화씨는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얼마냐, 계산할게’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내가 계산했다’고 했다"며 "아버지가 입원하는 그날, 엄마가 카드를 건넸다"고 전했다. 이후 고인은 엄앵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앵란은 오랜만에 걸려 온 고인의 전화에 "왜 감사 인사가 없었나 했다. 기다렸다"고 말했고, 신성일은 "고맙소"라고 답했다.

엄앵란도 올해 3월 채널A 뉴스에 출연해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며 "(우리 부부는) 톱스타들이 초라하게 죽었던 옛날 시대에 살았다. 내 남편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