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상에서 영감받은 옷, '하무' 론칭
한복 천으로 만든 항공 점퍼 등 전통과 현대 뒤섞어
‘안시성’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의 의상 감독으로 활약한 이진희 디자이너가 패션 브랜드 하무(河舞)를 론칭했다. 20여 년간 무대 미술가,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이 씨가 자신의 작업에서 영감받아 만든 기성복이다. ‘물의 춤’을 뜻하는 브랜드명처럼 물 흐르듯 자유롭고 야성적인 작업 방식을 녹여냈다.
무대미술과 영화 의상 작업을 주로 해온 이 디자이너가 기성복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에서 기인한다. "몸을 조이는 여성복이 불편하고 폭력적이라고 여겨 남자 옷을 입거나 직접 만들어 입었다. 내 옷을 보고 자신의 옷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4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하무를 선보이게 됐다."
하무의 옷에는 이 씨가 작업해 온 작품의 흔적이 담겼다. 한복을 주제로 한 이번 시즌 옷 중에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박보검이 입었던 한복감으로 만든 재킷도 있다. 지퍼로 여미는 항공 점퍼 형태로, 한복 원단과 만나 색다른 미감을 준다.
이 디자이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한 후 영화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패션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무대미술의 한 부분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천’과 ‘색’이 주는 예술적 영감에 사로잡혔다. 영화 의상을 만들다 기성복을 만드는 게 어렵진 않았을까? 이 씨가 경험한 바로는 둘의 기획방식과 제작과정엔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작품 활동에서 얻은 경험들이 하무를 특별한 옷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보통의 패션 디자이너가 계절과 유행의 흐름을 반영해 옷을 짓는 반면, 이 디자이너는 자신이 해온 작품에서 영감을 찾는다. 성별을 구분하지도, 치수를 표기하지도 않는다. 하무의 옷은 몸의 형태에 따라 편하게 떨어지는 넉넉한 형태로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입을 수 있다.
원단을 수작업으로 가공해 수공예적인 감성을 살린 것도 특징이다. 실크를 구김 가공하거나 진흙 염색을 해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옷감에 페인트를 발라 코팅하는 작화(作畵) 작업을 통해 디자이너 감성을 살렸다. 진주실크, 한산모시, 안동마, 볼로냐 실크 등 전통 소재와 고급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형태는 간결하게 구성해 현대적인 느낌을 살렸다. 그래서인지 하무의 옷은 전통과 현대, 예술과 일상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았다.
하무는 론칭을 기념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북촌에 쇼룸을 겸한 작업실을 열었다. 서영희 스타일리스트가 화보 스타일링을 진행했고, 신경옥 디자이너가 매장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이 디자이너는 첫 시즌에는 한복을 모티브로 한국적인 의상을 선보였지만, 다음 시즌에는 서양의 중세시대에서 영감을 얻는 등 매번 주제를 바꿔 창의적인 옷을 보이겠다고 밝혔다. 영화와 무대의상 작업도 계속할 예정이다. "하무의 영감은 무대에서 나오기 때문에 작품 활동을 게을리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