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았지만 내면의 에너지가 강렬했던 사람, 자신과 타인에게 엄격한 사람, 늘 옷깃의 단추를 여미지 않고 넥타이를 매지 않는 사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 단 두 권의 책을 냈지만 20세기의 중요한 철학자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만큼 진리를 향한 대담한 열정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그는 보통 인류와 다른 특이한 삶을 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자기 철학이 100년 뒤에나 비로소 이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학은 번호 자물쇠로 금고를 열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각각의 다이얼을 약간 조절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다이얼의 모든 숫자가 제대로 들어맞아야 비로소 금고 문이 열린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제강업을 하는 아버지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수학과 자연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뒤 베를린의 한 공과대학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했다. 23세 때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쓴 '수학의 원리'를 읽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가서 기꺼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바꾸어 놓았다. 그는 자원 입대했는데, 배낭에는 톨스토이의 책과 '철학일기'가 들어 있었다. 전장(戰場)에서 떠오른 철학적 명제들을 노트에 옮겨 적은 '철학일기'는 1914년에서 1917년까지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전사할 경우 보내달라고 노트마다 오스트리아에 사는 누나의 주소와 스승 러셀의 주소를 적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톨스토이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아 금욕주의자이고 비세속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큰 유산을 형제자매에게 분배했다. 또한 지적 허영심이 악의 근원이라고 엄격하게 멀리했다. 논리학 이론과 언어철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 철학자는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되기 전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1920년에서 1926년까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