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30일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리자 강하게 반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야당 의원이 관련 질문을 하자 "이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며 "일본 정부는 의연하게 대응해 가겠다"고 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아베 총리의 답변이 끝나자 손뼉을 쳤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이수훈 주일 대사를 초치(招致)해 항의했다. 고노 외상은 "이번 판결은 한·일 기본 조약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일본 기업에 부당한 불이익을 끼쳐 한·일 우호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상태 시정을 포함해 적절한 조치를 즉시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구상서(口上書)를 이 대사에게 건넸다.

NHK방송은 고노 외상이 오른쪽으로 몸을 20도가량 비스듬히 한 상태에서 굳은 얼굴로 이 대사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약 20초 동안 그대로 보여줬다.

고노 외상은 이후 일본 기자들을 만나 "이번 조치는 법의 지배가 관철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한국 측이 일방적으로 일·한 관계의 근본을 훼손했다"고 했다. 일 외무성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날 아시아·대양주국 내에 '청구권 문제 대책실'을 설치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를 일시 귀국시키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고노 외상은 이날 '국제재판'을 거론,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통해 이 문제를 여론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경제계도 일본 정부와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게이단렌(經團連)과 경제동우회, 일본상공회의소, 일본 경영자단체연맹은 기자회견에서 "일·한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은 "이번 판결이 (양국 경제 관계에) 이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상당히 걱정된다"고 했다. 일본 기업들은 한·일 관계가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 출장 금지, 지사 폐쇄 등을 포함한 단계별 조치를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은 이번 사태가 한·일 관계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대법원의 배상 명령을 긴급 뉴스로 중요하게 다뤘다. NHK방송은 특집 뉴스를 편성, 서울과 도쿄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줬다. NHK는 올해가 미래 지향적 관계에 합의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인데 강제징용,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旭日旗) 문제 등으로 삐걱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고 정리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한국 정부의 요인(要人)으로 이 결정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이번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도쿄의 한 외교 소식통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 간 갈등으로 피해를 보는 일본인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민간 기업으로 확대돼 일반인들이 한국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위안부 합의에 이어 한·일 기본 합의까지 사실상 파기한다면 앞으로 한국과 어떤 합의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