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Books팀장

'음주인(飮酒人)'이란 표현이 있더군요. 신간 '한시 속의 술, 술 속의 한시'(연암서가)에서 보았습니다. 술 마시는 사람? 홍상훈 인제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진정한 술꾼'이라 번역했습니다. 중국 송나라 시인 장뢰(1054~1114)가 도잠(도연명·365~427)의 시운(詩韻)에 따라 지은 연작시에 나옵니다.

'평생 만사에 게을렀지만/ 술 마시는 데만 근면했다/(중략)/ 그저 평생 술 마시는 동안/ 진정한 술꾼에 부끄럽지 말아야지[不愧飮酒人]'.

시인 조지훈(1920~1968)이 1956년 쓴 유명한 수필 '주도유단(酒道有段)'도 결국 진정한 술꾼에 대한 이야기더군요. 사람을 사귀려고, 잠을 잘 자려고,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 마시는 사람은 주도의 유단자가 아니랍니다. 술의 진경을 배우는 '학주(學酒)'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급인 '주졸(酒卒)'이 될 수 있답니다. 술의 취미를 맛보는 초단인 '애주(愛酒)'부터 술로 인해 다른 술 세계로 떠난 9단 '열반주(涅槃酒)'에 이르기까지 유단자는 모두 어떤 목적을 떠난 '음주인'입니다.

술 마시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음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네요. 음주인의 용법을 보니 시인·연예인·방송인·언론인·정치인 같은 모든 사람[人] 앞에는 '진정한'이란 말이 숨겨져 있다는 각성이 들어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가을비 내리는 주말입니다. 도잠이 쓴 '연이은 비에 홀로 술을 마시다[連雨獨飮]', 이백(701~762)이 지은 '술잔 들고 달에게 묻노라[把酒問月]' 같은 한시 읽으면서 술 한잔하는 '독서 음주인'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