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애플 등 미국 주요 기업과 정부 기관 정보·통신(IT) 기기에 중국의 스파이칩이 심어져 정보가 유출됐을 의혹을 제기한 블룸버그 보도에 기업의 수장들이 직접 나서 강력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어 미국과 중국 간 갈등 국면에 어떤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는 지난 4일(현지 시각) 대만계 서버 제조업체 ‘슈퍼마이크로’가 애플,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에 납품하는 마더보드(컴퓨터 주기판)에 감시용 초소형 칩을 심어 수년 동안 해당 기업들의 지식재산권과 거래 기밀을 수집하는 등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BBW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2015년 네트워크에서 이상 반응을 발견하고, 수퍼마이크로가 납품한 서버에서 쌀알보다 작은 초소형 칩을 발견했다. 애플의 신고를 접수한 미 연방수사국(FBI)은 서버의 마더보드에 칩을 심은 배후로 중국인민해방군 산하 조직을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대상으로 지목된 기업들과 중국 정부는 물론, 미 정부도 관련 내용을 즉각 부인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기존 피해 대상으로 지목한 기업들 뿐 아니라 미 대형 통신사의 네트워크 서버에서도 중국의 스파이 칩이 발견됐다고 추가 폭로를 이어갔다. 이후 블룸버그가 중국의 스파이칩이 심어졌다고 주장한 슈퍼마이크로의 서버를 사용해 온 세계 각국 기업과 정부 기관도 관련 조사에 착수하는 등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고 있다.
파장이 확산되자 당사자들은 더 강력하게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피해 대상으로 지목된 기업 수장들은 직접 목소리를 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19일 미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 뉴스와 인터뷰에서 블룸버그 보도에 대해 "그들(블룸버그)과 개인적으로 대화했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말이 바뀌었다"며 "우리는 회사를 완전히 헤집어 스파이칩에 대해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쿡 CEO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스파이칩 보도와 관련해 진실은 없다"고 강조하며 블룸버그에 보도 철회를 요청했다고 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앤디 재시 CEO는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그들(블룸버그)은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은 계속 바뀌었다"며 "블룸버그는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우리의 답변에 관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시 CEO는 "기자들은 (취재원의) 농간에 당했거나 소설을 쓴 것이다. 블룸버그는 (보도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퍼마이크로도 자사 제품에 스파이칩을 탑재했다는 주장을 강력 반박했다. 찰스 리앙 슈퍼마이크로 CEO는 CNBC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자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서버를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으며, 블룸버그의 보도는 고객들에게 부당한 혼란과 우려를 줬다"고 말했다.
리앙 CEO는 "블룸버그가 주장한 스파이칩이 심어진 마더보드는 단 하나도 생산하지 않았다"며 "우리 제품에서 악성 하드웨어가 발견됐다는 정부 기관이나 고객의 신고도 전혀 없었다. 블룸버그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블룸버그는 책임을 지고 악의적인 보도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보도 내용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공개 반박에 나섰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버즈피드에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1년 넘게 진행한 조사를 통해 이런 결과를 얻어냈다"며 "이 기간 동안 우리는 100건 이상의 인터뷰를 했다. 개인적 소식통과 정부 관리, 기업의 내부 관계자 17명에게서 하드웨어 조작과 공격 징후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는 또 기사에서 언급된 기업들과 중국 외무부가 발표한 성명의 전체 내용도 공개했다. 우리는 보도의 출처에 확신을 갖고 있고, (우리의) 입장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다.
양측의 대립이 팽팽한 상황에서 그동안 무역 전쟁에 이어 정치·외교적 갈등이 심화된 미국과 중국 정부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중국 당국은 블룸버그의 주장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0일 중국이 블룸버그가 주장한 스파이칩을 탑재할 수 있는 기술과 정치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블룸버그의 이번 보도로 중국 정부와 IT업계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유언비어’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미 정부는 관련 의혹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커스틴 닐슨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 10일 CNBC에 "우리는 그 기사(블룸버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조사할 것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매우 염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고 새로운 위협이라는 사실"이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10일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서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의원들에게 "신문 기사나 잡지 등 여러분이 읽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