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 반(反)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59) 피살 사건과 관련, 사우디 정부를 두둔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가 미국의 전략적 동맹인 점을 감안해 ‘신중론’을 내세우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우디가 제공하는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잃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우디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언급했다. 그는 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면서도 "우리나라(미국)가 벌어들이는 사우디의 투자금을 잃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정부가 자신에게 설명해준 사건 경위가 불만족스럽다면서 사우디·터키에 나가 있는 미국 조사팀이 돌아오는 22일 밤이나 23일에는 사건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10월 19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운데 왼쪽)로 변장한 평화운동 단체 회원들이 사우디를 제재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는 아직 사실을 찾는 단계라면서 사우디 정부를 편드는 모양새다. 그는 22일 CNN 평론가 밴 존스와의 대담에서 카슈끄지 사건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묻는 말이 나오자 "지금은 응답하기에 이르다. 더 많은 사실(팩트)을 모으고 있는 단계다"라며 "어떤 것이 믿을 만하고 어떤 것이 아닌지 백악관과 국무부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우디가 주는 전략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번 사건과 관련 미국은 "전략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두 나라 간 갈등이 불거졌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중동 지역 반군 테러에 대항하는 데 있어 사우디와의 동반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쿠슈너 보좌관은 ‘사우디 왕실의 실세’이자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알려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33)와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가 비슷한 두 사람은 중동 지역에 관한 다양한 전략을 논의하면서 가까워졌다고 CNN은 전했다. 사건 초반에 빈살만 왕세자는 쿠슈너 보좌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서구 국가에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도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두 나라 간 전략적 협력 관계가 견고함을 보여줬다. 그는 22일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와 회동해 이란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정부는 이날 트위터에 빈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 의회가 이번 사건과 관련 사우디를 제재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한 미 의회의 요구를 거부했으며 므누신 장관은 카슈끄지 피살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우디 제재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막말’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이번 행정부가 카슈끄지 피살 사건과 관련 사우디를 향해 비난 강도를 높이지 않는 것은 두 나라가 무기와 원유, 로비라는 측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제1의 미국 무기 수입국으로 미국의 충성 고객이다. 또 미국은 일 평균 88만배럴에 달하는 사우디 원유를 수입하고 있으며 사우디는 대미(對美) 로비로 지난해에만 900만달러(약 102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이란과 앙숙 관계인 사우디는 대(對)이란 제재를 이행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미국의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