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린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최근 새로운 셋방살이에 세간을 꾸리느라 분주했다. 세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두고 온 집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텅 비워졌다.

독립하기 전의 내 방은 두 평 남짓한 작고 아담한 방이었다. 노을이 질 때면 서쪽 하늘의 태양빛이 창을 통해 온 방 가득 퍼졌다. 하교 후 '열공모드'로 창가 앞 책상에 자신 있게 앉았다가도 곧장 따듯한 햇살에 완전한 렘수면 상태가 되곤 했다. 그 방은 나의 모든 어린 시절을 목격했고 온갖 치기들을 받아주었다.

실기 공부를 한답시고 인형에게 선생님인 척 주저리주저리 발 연기를 할 때도, 거실 무선 전화기를 가져와 문에서 가장 먼 모서리에 앉아 친구와 밤새 키득거릴 때에도, 다이어트를 결심한 지 며칠 안 돼 야식을 먹은 죄책감에 인터넷으로 '이소라 다이어트 뱃살 편'을 틀고 달밤에 땀을 뻘뻘 흘릴 때에도 그 방은 무너지거나 폭파되지 않았다.

이따금 터져버린 눈물도 묵묵히 받아주었다. 방황과 상실의 몸부림. 미성년과 청춘의 시절이 내 방 장판과 벽지에 오롯이 녹아들어 갔다. 당시 나는 그 방에 홀로 있다는 것이 슬펐고, 방 안에 갇혀서만 울 수 있는 내가 싫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혼자여야 한다고, 아무도 없다고 방이 가르쳐주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내 방은 내 마음이었다. 내 모든 면을 받아줄 수 있는 곳이었고, 완전하게 솔직할 수 있는 기회들이었다.

새로 얻어 나온 셋방에서 옛집을 생각하며 문득, 함께 솔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것도 화려한 것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든든할 것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더욱 충분히 웃고 충분히 울며 살아갈 테니까.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그런 집을 주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집이 되어 주는 것. 창가로 쏟아진 노을빛처럼 그렇게 서로를 감싸길, 그런 집 같은 사람이 되길 다짐하며 혼자 사는 이 집에서도 따뜻함을 요청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