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낮 육군사관학교 발전기금 사무국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1987년 육사 재학 중 위암으로 순직한 이상엽 소위의 아버지 이승우(84)씨였다. 이씨는 "1억원을 학교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31년간 모은 아들의 유족연금과 아들이 중·고교 시절 저금통에 모아둔 용돈 20여만원 등을 더한 돈이라고 했다.
3일 후 이씨가 서울 노원구 육사를 방문했다. 이씨는 "유족연금이 나올 때부터 아들 목숨 값인데, 꼭 나라에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아들이 못다 이룬 애국의 꿈을 후배 생도들이 이루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씨는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았다. 아내도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이상엽 소위는 이씨의 네 아들 중 둘째였다. 가발 도·소매 사업을 했던 이씨와 함께 초등학교 시절 3년간 미국 생활을 해 영어가 유창했다. 이 소위는 서울 경성중·경성고를 졸업하고 1984년 육사 44기로 입학했다.
이 소위는 2학년이던 1985년 7월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에 학년 대표로 파견됐다. 동기 340여 명 가운데 영어 능력, 성적, 체력을 고려해 유일하게 뽑힌 것이다. 이 소위는 키 180㎝에 태권도 3단으로 건장했다고 한다.
이 소위는 웨스트포인트에서 4년을 교육받고 한국에 돌아와 중위로 임관할 예정이었다. 이씨는 "아들이 미국 육사에서도 전교 20등 안에 들었을 정도로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미국 생활 1년여 만에 위암 진단을 받았다. 미국 음식이 몸에 맞지 않아 소화가 잘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암이 퍼지고 있었다. 이 소위는 미국 월터리드 육군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지 한 달여 만인 1987년 3월 21세로 숨을 거뒀다. 이씨는 "나을 줄 알고 미국으로 병문안 한 번 안 간 게 평생 후회된다"고 말했다.
영결식은 육사 학교장으로 열렸다. 이 소위의 육사 동기인 박일송 대령은 "상엽이 아버지가 계속 눈물을 흘리셨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참 성실하고 착했던 친구였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웨스트포인트에서 함께 공부한 미국 사관생도들도 추모 편지를 보냈다. 이 소위는 웨스트포인트에 태권도 클럽을 만들어 한국 문화 전파에 힘썼다. 쓰러지기 전날에는 예일대와의 학교 대항 권투시합에 출전했을 정도로 교내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육사는 이씨를 육군 소위로 추서하고, 순직 처리해 대전 현충원에 안장했다. 국가는 매달 이 소위 가족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했다. 아버지는 "형편이 안 좋을 때 그 돈을 쪼개 생활비에 보태 썼지만 사정이 나아지면 곧장 채워넣었다"고 했다.
정상조 육사발전기금 사무국장은 "감정을 절제하려 애쓰셨지만 기금 전달식을 하고 환담을 하며 아들 사진을 보여 드렸더니 금세 눈시울을 붉히셨다"고 전했다. "자택이 있는 일산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는데, 폐 끼치지 않겠다며 사양하시고는 지하철을 타고 되돌아가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