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세기
바다 가까운 공원묘지에는 이런 추모비가 있다
'여기 잠든 사람은 이십세기에 나서 대부분을 살다가 이십일세기에 죽었다 그러니 죽은 곡절은 모두 이십세기에 있다 살아온 곡절도 거기 함께 있으니 여기에는 이십세기의 곡절이 잠들어 있는 셈이다'
추모비 옆에는 지난해 버리고 간 꼬막 껍데기들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십세기는 하나의 지층이 되고 있었다
―문신(1973~ )
이십세기의 초반에 우리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없는 나라에서 그래도 지금의 우리말 문장을 만들고 우리말로 된 시를 짓고 소설을 남겨 한 세기 지난 지금 무릎 치며 읽고는 합니다. 저기, 이십세기에 나서 온갖 신산한 일들 겪으며 일생을 마쳤을 범부의 삶을 떠올려봅니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공동 추모비라고 해도 되겠네요. 허나 죽은 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산 자들에게 하는 말이지요. 이십세기 중반에 태어난 이들이 지금 중한 나랏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십일 세기의 곡절’을 남기고 있는 셈이지요. ‘이십세기의 곡절’을 거울삼자는 추모비의 숨은 뜻이 서늘합니다. 그 곁의 ‘꼬막 껍데기’가 재밌습니다. ‘패총’이라는 말이지요. 패총의 흔적으로도 역사는 남는다는 ‘교훈’도 숨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