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라이벌戰... 1세대 아이돌 콘서트 현장 가보니
장외에선 H.O.T.의 勝, 티켓 매진에 굿즈 판매 열기도
각종 의혹에 보컬 '강성훈' 빠지자 열기 식은 젝스키스

1990년대 후반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1세대 아이돌 그룹 ‘H.O.T.’와 ‘젝스키스’의 콘서트가 13일 저녁 열렸다. H.O.T.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젝스키스는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5㎞쯤 떨어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각각 공연을 했다. 두 아이돌 그룹 팬들은"두 그룹이 한창 활동하던 1990년대 후반에도 같은 날 콘서트를 연 적은 없었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두 그룹은 결성도, 해체도, 재결합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과정으로 이뤄졌다. 팬들의 인기도 쌍벽을 이뤘다. 그들이 17~18년만에 다시 ‘세기의 라이벌전’을 펼치게 된 것이다.

13일 오전 9시, H.O.T.의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앞. 굿즈를 사기 위해 4000명의 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H.O.T.는 1996년 9월 데뷔해 2001년 5월 해체했다. 젝스키스는 1997년 4월 데뷔해 2000년 5월 해체했다. 재결합은 젝스키스가 더 빨랐다. 젝스키스는 2016년 4월 14일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재결합했고, 같은 해 5월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고 활동을 시작했다. H.O.T. 역시 ‘무한도전’을 통해 올 2월 재결합했다. 이후 정식으로 콘서트를 열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빗발쳤고, 국내 최대 규모인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빌려 13~14일 이틀간 콘서트를 열기로 한 것이다.

관객 동원력은 차이를 보였다. H.O.T.는 4만석 규모의 공연 이틀 치 티켓 8만장이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 반면 젝스키스는 총 2만장 중 2000장 가량을 못 팔았다.(옥션티켓 집계) 재결합 후 처음으로 열었던 2016년 9월 콘서트 때는 티켓이 매진됐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13일 오전 10시, 젝스키스의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 앞에서 팬들이 굿즈를 사려고 기다리고 있다.

젝스키스는 최근 메인 보컬 강성훈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대만 언론에 강성훈이 지난달 대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팬미팅을 일방적으로 취소했고, 현지 업체에 1억원 정도 손해를 입혔다는 보도가 나왔고, 뒤이어 강성훈의 팬클럽 기부금 횡령 의혹, 팬클럽 운영자와의 교제설 등도 터져 나왔다. 젝스키스 팬들은 "강성훈이 탈퇴하지 않으면 콘서트를 보이콧하겠다"고 항의했고, 결국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강성훈이 이번 콘서트에서 하차한다고 발표했다.

젝스키스 콘서트 시작을 앞둔 이날 오후 5시 30분쯤, 올림픽체조경기장 앞에서 만난 고모(32)씨는 "중학생 때부터 젝스키스를 좋아했다"며 "2년 전 젝스키스가 재결합한 뒤 열린 콘서트에는 빠지지 않고 갔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멤버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이번 콘서트에 멤버 1명(강성훈)이 빠지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앞에서 H.O.T. 팬클럽 상징인 흰색 우의를 입은 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콘서트장 앞에서 판매하는 아티스트 굿즈(기념품·goods) 판매 열기도 양쪽이 차이를 보였다. H.O.T. 굿즈 판매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주경기장 정문 앞에서 시작됐다. 판매 시작 전 줄을 선 사람만 4000여명. 1990년대로 돌아간 것처럼 교복을 입고, 백팩에 ‘토니마누라’처럼 예전에 썼던 별명을 붙여놓은 사람도 곳곳에 보였다. 이모(33)씨는 "새벽 4시에 도착했다. 와서 보니 앞에 200명쯤 있더라"며 "앞에서 다 사버려서 모자를 구입하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했다. 오전 11시쯤 굿즈를 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2배 가량 늘었고,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어졌다.

13일 오전, 17년만에 열리는 H.O.T. 콘서트를 보기 위해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찾은 팬들. 학창시절에 하던 것처럼 가방을 꾸며 들고 왔다.

이날 만난 팬들은 대부분 30대 여성. 중학교·고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좋아했던 팬들이 많았다. 부산에서 온 김민영(33)씨는 "새벽에 일어나 KTX를 타고 왔는데 설레서 잠 한숨 못 잤다"라며 "어린 시절 H.O.T. 콘서트를 꼭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갔다. 정말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박소연(33)씨는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중·고등학생 때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부모님 허락을 겨우 받아 내 콘서트를 갈 수 있었는데, 이제 마음대로 내가 번 돈으로 내 차를 타고 오빠들의 콘서트를 볼 수 있다니 진짜 행복하다"고 했다.

반면 젝스키스 콘서트장 앞에서 이날 오전 10시 굿즈 판매가 시작될 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190여명. 줄을 선 팬 10명 중 7명쯤은 중국·일본·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국내 팬들은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홍콩인 칭기기(24)씨는 "전날(12일) 한국에 도착해 젝스키스 콘서트를 본 뒤 15일 돌아간다"며 "은지원이 출연한 ‘신서유기(tvN 예능 프로그램)’, ‘주간아이돌(MBC에브리원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2016년부터 젝스키스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우시코시 에리(33)씨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은지원이 많이 나와 젝스키스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팬이 된 건 작년 여름 오사카 팬미팅에 참석하면서부터"라며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오직 젝스키스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다. 13일, 14일 공연을 전부 볼 것"이라고 했다.

젝스키스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 앞에서 13일 오후 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팬 층도 두 그룹이 달랐다. H.O.T.는 대부분 30대인 반면 젝스키스는 다양한 연령층이 찾았다. 재결합 후 방송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면서 팬층이 두터워 진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2학년인 최모(17)양은 "작년 12월 31일 TV로 ‘가요대제전’을 보다가 팬이 됐다"며 "주변에 저 같이 옛날 그룹을 좋아하는 친구도 많다"고 했다. 최모(48)씨는 2년 전 젝스키스가 재결합한 ‘무한도전’ 방송을 보다 팬이 됐다. 그는 "1990년대엔 특별히 젝스키스를 좋아하지 않았다"며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작은 딸이 비투비(BTOB) 팬이다. 젝스키스 팬인 엄마를 적극 지지해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