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대기업 총수 등 거물급 인사들의 선고가 줄줄이 이어졌다. 이날 법의 심판대에 선 피고인만 19명, 이들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만 76건(중복포함)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밀어붙이고 있는 ‘적폐 청산’ 작업의 대상이 된 전 정권 사람들, 혹은 이들을 도운 기업인들이다. 이날 하루 법원 안팎에서는 ‘슈퍼데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건에 따라, 사람에 따라 희비는 엇갈렸다. 이날 재판에서 감형(減刑)돼 구속돼 있다가 풀려난 사람도 있는 반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덜컥 법정구속된 사람도 있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불과 두달 전 구속기한 만료료 석방됐다가 다시 구속됐으며, 13일 전 석방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또 구속될 위기를 간신히 면했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들은 5일 각각의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구속을 면했다.

◇무죄·집행유예 15명… '나온 사람'과 '피한 사람'
롯데그룹 총수 일가(一家)에는 행운의 날이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롯데그룹 경영비리(뇌물 혐의 등)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가 이날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 2월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지 234일 만이다.

신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지만, 법원이 "유죄는 인정되지만 상대적으로 죄책이 가볍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이날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는 신 회장과 신 이사장 외에 이 사건 관련 피고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등 7명에 대해서도 1심과는 달리 검사가 공소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 ‘면소’, ‘파기’ 결정을 내렸다. 이들 7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보수 단체 목록인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에게 부당한 자금 지원을 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기소됐는데, 이날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 전 장관은 앞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두번 구속됐다가 두번 풀려났다. 지난달 22일 풀려난 조 전 장관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13일만에 또 구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조 전 장관과 함께 선고받은 박준우 전 정무수석과 신동철·정관주·오도성 전 비서관도 이날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특수활동비 5억원을 받은 혐의(뇌물·국고손실 등)로 기소된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왼쪽부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 이명박 전 대통령.

◇실형 4명… '못 나온 사람'과 '또 들어간 사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60일 만에 또 구속됐다. 그는 2017년 1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2심에서 징역 4년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하지만 구속기한 만료로 지난 8월 6일 석방됐다. 구속된 지 562일만이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재판장 최병철)는 이날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그를 법정구속했다.

이밖에 화이트리스트 작성 등에 관여한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은 강요죄가 유죄로 인정된데다 블랙리스트 사건 2심에서의 위증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현기환 전 정무수석도 이날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가정보원과 공모해 새누리당 당내 경선에 개입하고, 국정원 자금 5억원을 횡령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현 전 수석은 별건으로 이미 구속돼 있는 상태다.

이날 가장 주목받은 재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및 횡령 사건 1심 선고공판이었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7000여만원이 각각 선고됐다. 중형이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22일 구속돼 188일 동안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