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공식 탈퇴(Brexit·2019년 3월 29일)가 반년도 안 남았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후 양측 관계를 정하는 '탈퇴 협정' 협상을 1년 반 동안 벌였으나 진전을 보지 못한 상태다. 영국은 지난달 19~20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비공식 EU 정상회의에서 상품 교역은 지금처럼 자유롭게 하되, 국경을 넘는 사람과 서비스의 이동은 단속하는 이른바 '체커스(Chequers) 플랜'을 최종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EU의 27국 정상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래서 '합의 없는(no deal) 탈퇴' 전망과 '브렉시트 재투표'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브렉시트 과정과 쟁점, 전망을 짚어본다.
Q: 영국이 브렉시트를 원한 이유는
EU에서 탈퇴하면, 2030년까지 영국 경제가 8% 이상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런데도 영국인이 2016년 6월 23일 '탈퇴'를 결정(찬성 51.9%)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엄청난 이민자 유입이다. 2004년 3만5000명대이던 영국으로의 이민자 순(純)이동은 EU 확대 등과 맞물려 유럽 대륙 내 중동·아프리카계 불법 이민자까지 몰려오면서 2016년 33만6000명으로 급증했다. 영국인들의 원성은 극에 달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10만명 이하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Q: 양측의 타협 왜 힘든가
영국이 EU의 전신(前身)인 유럽공동체에 가입(1975년)한 뒤 맺은 수많은 조약과 합의를 되돌리는 게 어렵다. 협상 철학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국은 EU 단일 시장의 경제적 이점은 계속 누리되, 사람의 이동도 막고 EU 본부의 간섭 같은 자국 주권이 침해되는 사안은 막겠다는 것이다. 반면 EU는 '입'에 맞는 것만 골라 EU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영국을 용납할 생각이 없다.
양측은 영국이 지불할 약 390억파운드(약 56조71000억원)의 '이별금' 규모와 영국에 사는 320만명의 EU 시민과 EU에 사는 영국인 78만명의 '브렉시트' 이후 지위에 대해서만 대략 합의했다.
Q: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원하는 對EU 관계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올 7월 런던 근교의 총리 별장인 체커스에서 발표한 '체커스 플랜'에서 "상품·자본·서비스·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운 'EU 단일 시장'에서 탈퇴해 EU와 상품 교역만 자유로운 자유무역지대(FTA)를 이루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농산물, 일반 상품 무역은 EU 규칙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Q: EU는 왜 영국 案을 거부하나
EU 정상들은 잘츠부르크에서 메이 총리의 안(案)을 냉정하게 거부했다. 영국의 '골라 먹기'식 탈퇴는, 경제적 과실은 따 먹으면서 브뤼셀 EU 본부의 지침과 사법권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집권한 EU 내 일부 국가들에 '나쁜 선례(先例)'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EU는 영국 내부에서도 '체커스 플랜'에 대한 반발이 많은 만큼 '수정안'을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이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체커스 플랜이 EU와 '마찰 없는 교역'을 하기 위해 EU 규칙 수용, EU 사법권 일부 인정 등 너무 많은 걸 양보해 "영국이 EU의 속국(屬國)이 될 것"이라고 반발한다.
Q: '北아일랜드 국경' 이슈가 양측 '발목' 잡는다는데
영국과 EU가 어떤 합의를 해도, 영국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간 499㎞에 달하는 국경선이 '발목'을 잡는다. 양국 국경선을 가로지르는 200여 도로엔 1998년 벨파스트 협정에 따라 현재 검문소가 전무(全無)하다.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듯이, 매일 3만여 명과 매월 17만7000대의 대형 트럭, 1850만대의 차량이 드나들어 섬 전체가 한 경제권이다. 그래서 북아일랜드 주민의 56%는 EU '잔류'에 찬성했다.
그런데 앞으로 서로 다른 법규와 관세를 적용받는 영국 시장(북아일랜드)과 EU 시장(아일랜드)이 이 국경선에서 만나면, 지금과 같은 이동을 보장하면서 세관 검사와 이민자 단속을 할 수 없다. EU는 '실현 가능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북아일랜드를 EU의 단일 시장, 관세 동맹에 두라고 한다. 하지만 이 요구는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주권 포기를 뜻한다.
Q: 협상 타결의 최종 기한은?
내년 3월 29일 밤 11시(영국 시각)면 무조건 탈퇴다. 그전에 탈퇴 협정안(案)이 마련돼 EU 회원 27국이 각기 비준해야 한다. EU 정상들로 구성된 '유럽이사회'는 이달 18일 다시 모인다. EU 정상들은 각국의 '협정 비준' 일정상 아무리 늦어도 다음 달까지는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Q: 합의 없이 내년 3월 29일을 맞는다면?
영국 정부는 식량, 필수 의약품 비축 같은 비상 계획을 세웠다. 영국의 식량 자립도는 60% 정도다. 제약사들은 이미 덴마크산(産) 인슐린 6주치를 확보·비축하고 있다. 영국 소설가 로버트 해리스는 트위터에 "지금 영국 분위기는 1차 세계대전 직전 수개월간 시대 흐름에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었던 것과 비슷하다"고 썼다. '합의 없는 브렉시트'는 20조달러 규모의 EU 경제권에도 재앙이다.
협상 끝내 불발되면 英, 탈퇴냐 잔류냐 재투표 가능성도
영국에선 요즘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referendum)를 다시 하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보수당 전(前) 총리였던 존 메이저는 지난달 말 "'허구가 아니라 사실(fact)에 근거한' 재투표를 하자"고 말했다. 또 당초 보수당과 마찬가지로 찬반(贊反) 의견이 엇갈렸던 제1야당 노동당도 지난달 25일 "EU 협상이 끝내 '노딜'로 결론나면, 브렉시트 찬반 투표를 다시 한다"는 것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국민 여론도 과반(54%)이 'EU 잔류' 쪽으로 기울었다. 불법 이민자들의 일자리 잠식을 비난하며 브렉시트 찬성에 앞장섰던 영국의 3대 노조의 경우, 올 9월 초 여론조사에선 60% 안팎이 '잔류'를 원했다. 브렉시트 이후 상품·서비스 수출이 어려워지면 고용의 안정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리사 메이 총리는 "절대로 재투표는 없다"고 거듭 못 박았다. 그는 이달 3일 "일부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처음에 잘못 투표했으니 다시 투표하라'고 말하는 게 타당한가"라며 "이런 말을 좇다가 영국 민주주의의 기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여론이 재투표를 실시할 만큼 '결정적'이지 못하다"며 두 번째 국민투표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