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Books팀장

저작권 없이 출간하는 '해적판'은 범죄라는 게 상식입니다. 예전에는 간혹 무단 출간해 돈을 버는 일도 있었지만요. 그런데 최근 저작권 계약 없이 출간했다고 당당히 밝히고 나온 책이 있습니다. '1968,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연경문화사). 출판사 측은 책 앞머리에 '저작권자 및 저작권사의 존재 추적 불가로 인하여 미계약 상황에서 출간하게 되었음을 밝힙니다'고 적었습니다.

50년 전 사건입니다. 1968년 1월 23일 12시 15분 미국 함정 푸에블로(Pueblo)호는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북한 해군에 피랍됩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1면 톱으로 보도했습니다. 푸에블로호는 일본 사세보항(港)을 출발해 청진 인근 바다로 올라가 북한과 소련의 전자 정보를 감청하고 2월 4일 귀환 예정이었습니다. 피랍 이틀 전인 1월 21일에는 북한 무장 요원들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지요. '1·21 사태' 또는 '김신조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一觸卽發) 상황이었네요.

함장은 미 해군 중령 로이드 부커. 그는 고문을 받는 등 포로 생활을 하다가 11개월 만에 83명 승조원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귀환합니다. 군사재판에 회부될 뻔했지만 해군장관 존 채피의 결단으로 처벌은 면했습니다. 책은 부커 함장이 피랍 당시를 회고한 기록입니다. 양희완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가 4년 전 미국 고서점에서 발견해 번역했습니다. 미국에선 1970년 나왔는데 이제야 번역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嘆)이 있습니다. 양 교수는 "남북, 미·북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한 이 시기에 북한군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좋은 정보를 주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로이드 부커 후손을 아시는 분은 연락 주세요. 출판사 측은 "책이 출간된 뒤에라도 연락이 된다면 소정의 저작권료를 지불하여 한국 내 저작권을 정당하게 취득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