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블록체인(Block Chain) 허브 도시’를 선언했다. 국제자유도시라는 지위를 활용해 제주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블록체인’을 선택한 것이다. 그 선봉장은 원희룡 제주도지사다.

원 지사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 기술 도입은 물론 암호화폐 상장 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확보 하는 방식) 허용을 정부에 공식 요구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블록체인 서울 2018’ 박람회에 참석한 원희룡 제주지사(왼쪽에서 5번째)가 한국 대표로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위한 제주의 역할과 목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원 지사는 지난 8월 3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17개 시도지사 첫 간담회에서 ‘암호화폐 상장공개 허용’이라는 ‘발칙한 요구’를 했다. 그는 “블록체인은 대한민국이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주도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이자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제주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원 지사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블록체인·암호화폐 서비스 업체 관계자들이 정부의 ICO 금지 정책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원 지사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은 육성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규제를 선도적으로 수립해 세계 블록체인 산업이 따라오는 ‘룰 메이커(Rule Maker)’가 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원희룡 지사가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원 지사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서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된 법적 특수지위를 가진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블록체인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외환, 금융, 사법 등 복합된 난제들을 제주특별법을 주기적으로 개정할 수 있다는 법적 특수지위를 활용해 다른 곳보다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희섭 제주도 미래전략국장은 “제주가 무비자제도와 우수한 해외자본 투자유치 여건 등을 활용해 세계의 블록체인 인력과 자본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며 “국제적 수준의 블록체인 허브도시로 거듭날 잠재력이 이미 충분한 곳”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우선 규제 개혁 없이도 가능한 선도적인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해 블록체인 초기시장을 형성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를 들면 토지대장을 블록체인 기술로 관리하는 것이다. 등기부등본이나 토지계약서까지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면 이중계약이나 탈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가세 환급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부가세 환급의 경우 현재는 공항에서 일괄적으로 이뤄져서 관광객들이 환급받은 돈을 제주도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관광객들이 물건을 구입한 점포에서 바로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관광객들이 환급받은 돈을 제주도에서 바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내수확대와 중소상인 수익증대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탄소저감행동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에도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다. 제주도는 오는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카본프리 아일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전기자동차 이용, 올레길 탐방, 바다 쓰레기 청소, 일회용 종이컵 사용 자제 등에 일종의 포인트를 제공한다.

이 포인트를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버스와 택시, 렌터카 등 모든 교통수단을 조합해 하나의 이동서비스로 제공하는 마스(MaaS·Mobility as a Service) 정산 시스템 구축에도 블록체인 기술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또 이와 별도로 ICO 관련 네거티브형 규제를 마련하고 ICO를 유형별로 세분화해 제한적, 점진적으로 ICO를 허용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 ‘투 트랙’ 전략을 추진해 크립토 펀드와 같은 벤처 캐피탈, 블록체인 스타트업 등 유관산업이 망라된 블록체인 생태계를 제주에 조성해 산업간 시너지를 창출해 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제주 블록체인 허브도시’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원 지사는 선거 후 제주 4차산업 혁명위원회 내에 블록체인 임시소위원회를 구성했다. 7~8월에는 제주 블록체인 허브도시에 대한 업계의 의견을 듣고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등 블록체인 업계와 협력하고 있다.

또 지난 8월 개최된 지역과 함께하는 혁신성장회의에서 중앙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주 블록체인 허브도시 조성을 요청한데 이어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요청했다.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도 제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원희룡 지사에게 블록체인, 암호화폐공개(ICO) 관련 중앙정부의 정책 수립에 목소리를 내 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현재 국내 유명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스위스, 싱가포르, 지브롤터 등 해외 현지법인(재단)을 통해 ICO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법인세와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등을 해당 도시에 지불하고 있다. 또 ICO로 모은 암호화폐 자금을 현금화하는 과정도 쉽지 않고, 환전하는 과정에서 빠져나가는 수수료 부담도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업체들이 법인계좌 개설이나 사무실 임대 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원 지사는 블록체인·암호화폐 서비스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국내 블록체인.암호화폐 기업들이 쫓기듯이 해외로 나가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에 근거지를 두고 다양한 시도와 혁신적인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블록체인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반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장부에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여러 대의 컴퓨터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일종의 디지털 공공 거래 장부다.

은행 등의 공신력 있는 제3자가 거래를 보증하지 않아도 거래 당사자끼리 가치를 교환할 수 있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주로 응용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과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향후 5년간 10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글로벌 IT 리서치 기업인 가트너(Gartner)는 2030년까지 3조1000억 달러(한화 3433조25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