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파 퍼트를 성공한 그는 잠시 멈칫했다. 퍼터를 쥔 손을 아래쪽으로 살짝 내리더니 천천히 두 손을 치켜들었다. 특유의 포효, 강렬한 어퍼컷 세리머니는 하지 않았다. 구름처럼 그린 주변을 메우고 환호하는 갤러리를 향해 웃어 보이며 인사하는 모습에선 어색함마저 느껴졌다. 1876일 만의 승리,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며 가슴 속으로 삭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3)가 돌아왔다. 네 차례의 허리 수술을 거치면서 총 683주 동안 1위(1997~2014년)를 지켰던 세계 랭킹이 1199위까지 떨어졌던 그가 세계 스포츠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내가 다시 해냈다니 믿을 수 없어"

우즈는 24일(한국 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이스트 레이크 골프클럽(파70·7385야드)에서 끝난 PGA 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875만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1오버파(버디 2, 보기 3개)를 쳤다. 4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69타를 기록한 그는 빌리 호셸(미국·9언더파), 더스틴 존슨(미국·7언더파)을 제치고 우승(상금 162만달러·약 18억원)했다. PGA 투어 우승은 2013년 8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이후 5년1개월 만이었다. 통산 80번째 투어 우승을 차지한 그는 샘 스니드(미국)가 가진 역대 최다승(82승)에 2승 차이로 다가섰다.

‘골프 황제’의 화려한 귀환 잔치였다. 24일(한국 시각) 붉은색 셔츠를 입은 타이거 우즈가 5년여 만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과 더불어 샘 스니드(82승·미국)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80승을 달성한 선수로 등극하는 영예를 안았다. 사진은 우즈가 구름 관중에 휩싸여 대회장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이스트 레이크 골프클럽(파70·7385야드)의 18번홀로 이동하는 모습.

우즈는 이날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 셔츠와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의 올해 최고 성적은 PGA 챔피언십 2위, 밸스파 챔피언십 공동 2위였다. 우즈는 페덱스컵 랭킹 20위의 자격으로 1~30위까지만 출전하는 이번 최종전에 도전했고,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선두를 지켰다. 3타 차 이상 리드한 상태에서 4라운드에 나섰을 때 승률은 100%(24전 24승)다.

우즈는 "마지막 홀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며 "'아직 끝난 게 아니니 제대로 샷 하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마지막 파 퍼트를 앞두고 갑자기 내가 우승하리라는 걸 깨달았다"며 "내가 다시 해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 세계 랭킹 1위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는 공동 4위를 하며 페덱스컵 챔피언(보너스 1000만달러)에 올랐다.

◇성 추문·부상·약물 논란 속 재기

미국 언론은 우즈의 부활 스토리를 '위대한 재기'로 평가하고 있다. 이혼과 성 추문(2009년), 약물 복용(2017년) 등 온갖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부상 후유증을 극복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는 2008년 십자인대가 없는 상태에서 US오픈에 출전, 91홀을 도는 연장 승부 끝에 우승했다. 하지만 이후 무릎과 허리 부상으로 여러 번 수술대에 올랐다. 10년 동안 허리 수술을 네 차례나 했다. 2016년과 2017년은 건너뛰다시피 했다. 우즈는 벤 호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호건은 1949년 운전을 하다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다시 걷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이듬해부터 1953년까지 메이저 6승을 올렸다.

우즈는 여자 친구 에리카 허먼(33)과의 관계에서 삶의 안정을 찾았다. 허먼은 우즈가 운영하는 플로리다 레스토랑의 매니저였다. 허먼은 우즈가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나서 달려와 포옹하고 키스했으며, 우즈는 옆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둘은 아직 결혼을 약속한 사이는 아니다.

◇우즈, 골프 역사 새로 쓸까

우즈는 샘 스니드가 보유한 통산 최다승과 잭 니클라우스가 보유한 메이저 최다승(18승) 기록 경신에 도전한다. 우즈의 메이저 우승은 2008년 US오픈을 끝으로 14승째에 멈춰 있다.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즈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한 니클라우스는 미국 골프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타이거의 메이저 18승은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즈는 역대 프로 골프 우승 상금 1위(1억1155만달러·약 1245억원)이고, 미 포브스지가 2017년 말을 기준으로 선정한 역대 스포츠 선수 통산 수입 2위(17억달러·약 1조8980억원)를 달린다. 그가 앞으로 몇 년간 지금의 기량을 유지한다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통산 수입 18억5000만달러)을 제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골프 팬들은 '돌아온 황제'의 다음 행보를 주목한다. 우즈는 오는 28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미국과 유럽 골프 대항전 라이더컵에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