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싼 백반집VS인사동 고급 백반집… 한식 상차림의 만족스러운 구성은?
밥을 중심으로 국과 김치는 그대로… 반찬의 간과 표정만 바꿔야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 끝에 붙어 있는 ‘중앙식당’은 여러 반찬과 함께 밥을 먹고 싶을 때 찾아가는 곳이다. 집이 곧 사무실인 프리랜서이다보니 취재가 아니라면 끼니는 대체로 간단히 만들어 해결한다. 대신 밑반찬 등이 먹고 싶을 때에는 근처 밥집을 찾아 나선다. 그래봐야 한 달에 최대 두세 번 꼴이다.
‘식사준비 다 됐다 다같이 먹자.’ 쟁반을 받아 한 숟갈 뜨려는데 뜬금 없이 보이스카우트(현 컵 스카우트)의 식사 노래가 생각났다. 때를 넘긴 점심이 유난히 맛있어 보였고, 또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그랬을 것이다. "한참만에 오셨네." 사장님도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시니 겸연쩍었다.
◇반찬 대여섯 가지 나오는 백반이 고작 오륙천 원...서울서 이 가격이라니 미안해 자주 못가
공장부터 사무실까지 두루 자리잡고 있는 집 주변에는 직장인 상대 밥집이 제법 있다. 기본인 백반이 5000원에 찌개류나 삼겹살 등도 낸다. 이사 오고 처음 2년 동안 눈에 뜨이는대로 찾아 먹어본 끝에 이곳, 중앙식당이 나의 밥집으로 자리 잡았다.
정식 즉 백반이 5000원이지만 고정 메뉴는 제육볶음이다. 백반에 2000원을 추가하면 대여섯 가지 반찬 중 연두부가 제육으로 대체된다. 밥집 사정을 아는지라 제육을 별도로 주문-그래봐야 1만2000원이다-할 요량이었으나, 식당 주인이 "혼자 먹는데 그럴 필요 없다"며 반려해 결국 제육을 추가해 밥과 반찬을 먹었다. 요즘 백반 가격이 1000원 올라 6000원이지만 그래봐야 8000원이다.
나는 왜 이곳을 계속 찾는가. 서울에서 오륙천 원짜리 한 끼를 파는 식당이라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적당히 깨끗하며 반찬 재활용의 낌새만 없으면 충분하다. 안이 적당히 보이도록 열린 주방이나 계산대 옆에 가지런히 정돈된, 근처 기업의 ‘대놓고 먹는’ 밥 장부만 봐도 일단 합격인데 음식도 맛있다. 우리가 ‘손맛’이라고 막연하게 그릴 맛의 전형이다. 양념을 많이 쓰고 소금간도 약하지 않으며 감칠맛도 풍성하다. 자칫 자욱하거나 무거울 수 있는데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잡혀 있다.
깻잎절임은 살짝 심심하고 부추무침에는 신맛이 좀 두드러진다. 양념이 두터운 가운데에서도 각 반찬이 조금씩 양보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아 밥과 함께 먹으면 균형이 맞고, 열심히 집어 먹어도 조금은 덜 부담스럽다. 게다가 양파가 아삭하게 살아 제육볶음에서 목소리를 내듯 조리한 솜씨는 당연히 좋다. 맑은국에 눈치 없게 끼어드는 청양고추의 칼칼함이 유일한 불만이다.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자주 찾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일단 집에서 3km 거리로 썩 가깝지 않다. 끼니를 위해서 걷기에는 좀 멀고 마을버스 등을 타기에는 귀찮다. 그래서 제육볶음이 꼭 생각날 때에만 나서는데, 물론 핑계이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서울의 경계선 안쪽에서 이런 가격에 이런 음식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워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가격 올린 고급 백반집이 추구하는 ‘요리로서의 밥’의 장단점
가격을 올린다면 백반은 어떤 음식이 되어야 할까? 답이라고 여길만한 밥집이 인사동에 존재했었다. 여느 밥집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밥집을 지향했다. 끼니로서의 밥이 아닌, 요리로서의 밥을 추구하는 음식점 말이다. 매일 아침 도정한 현미 포함 몇 가지 쌀을 고르면 압력솥으로 1인분씩 짓는다. 15분 안쪽에서 윤기가 좔좔 흐르는 밥이 식탁에 오르는데,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에 배인 구수한 밥의 향이 그저 아름다웠다. 여기에 생선구이나 맥적 등의 반찬을 곁들여 먹는 비용이 1만5000원이었다.
맛은 대체로 만족스러웠지만 몇몇 불만은 가셔낼 수 없었다. 일단 반찬에 비해 밥이 적었다. 한식은 중립적인 탄수화물인 밥에 반찬으로 맛과 질감의 조화 및 대조를 주어 완성된다. 따라서 밥이 맛도 있어야 하지만 일정 수준 부피를 갖춰야 반찬에 압도되지 않는다. 게다가 밥의 양이 너무 적으면 간이 강한 반찬에 맞춰 ‘푹푹 떠 먹는’ 즐거움도 원천봉쇄된다.
이곳에서는 추가 공기밥을 따로 지어 준비하는 대책까지 마련해 놓았지만, 원래 나오는 밥의 훌륭함은 어쨌든 아끼듯 음미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반찬의 집중력이 떨어졌다. 좋은 것을 다양하게 선보이겠다는 의욕이 오히려 반찬의 구심점을 흐렸다. 중심을 이뤄야할 단백질의 양은 너무 적고, 생채소나 김 등 간을 하지 않은 반찬이 너무 다양해 또렷한 밥의 표정을 가렸다. 나머지 조리한 반찬은 일반 밥집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겠다는 듯 간도 약하고 기름기도 적어 밥을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각 부분은 훌륭하지만 전체를 아울러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쉬운 한 끼였다.
보이스카우트의 식사 노래는 ‘밥 국 김치’라는 외침으로 끝나는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 좋든싫든 한식 상차림은 밥과 국, 김치로 시작하고 또 끝난다. 세 요소가 한식의 얼굴을 이루는 셈인데, 대체로 일반적인 밥집의 대안으로 고급화를 시도할 경우 일단 이 얼굴부터 해체하고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구성 자체를 통째로 바꿔버리거나 김치를 비롯한 강한 맛의 음식에서 힘을 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습관을 바꾸기가 어려운 일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시도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오히려 밥을 중심으로 강한 반찬이 보좌하는 얼굴은 그대로 두되, 그 안에서 전체의 조화를 감안해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거나 맛을 조정하는 식으로 표정만 바꿔주는 편이 훨씬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밥은 밥이니 너무 극적인 변화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다. 음식 전문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를 연재했으며,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음식문화 비평 연작을 썼다.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뉴욕 드로잉’ 등을 옮겼고,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문화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