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있니?'는 10만원, '회사 연봉은 얼마나 받니?'는 20만원….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의 내용입니다. 하고 싶은 잔소리가 있다면, 그에 맞는 액수를 지불하고 잔소리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웃자고 만든 거겠지만, 이런 메뉴판까지 등장하는 것 보면 명절 잔소리가 그리 달갑지 않은 젊은 세대가 꽤 많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추석을 한 주 앞둔 이번 주 주제는 '나만의 명절 잔소리 피하는 방법'입니다. 어르신들 기분은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잔소리로부터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특급 비법을 세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듣기 싫은 말 들었을 땐 "제가 부모님을 닮아서…"
십수 년에 걸친 임상시험 결과 흔히 명절 잔소리라고 불리는 말은 질문, 험담, 질문을 가장한 험담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단언컨대 정공법은 없다.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고 친척 어르신한테 "여보세요, 그런 말씀은 삼가주시죠"라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그중 몇몇은 방어할 수 있는 말이 있으니 바로 "제가 저희 부모님 닮아서 그런가 봐요"다. 상대가 같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게 하는 일종의 필살기다. 부모님을 닮지 못한 못난 자식이라 직접 써보진 못했으나 주변에서 써보니 효과가 꽤 좋단다.
겉치레일 듯한 과한 칭찬도 은근히 진이 빠지게 한다. "몰라보게 예뻐졌네" "그새 더 훤칠해졌네" 등등…. 그럴 때마다 사회에서처럼 "아이, 아녜요∼"라고 하면 "아니긴 뭐가 아니야"부터 시작해서 다소 부담스러운 대화로 이어진다. 칭찬 말씀을 들으면 이렇게 답해보는 건 어떨까.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회에서 그렇게 답하면 "쟤는 칭찬해줬더니 아니라고 하는 척도 않더라"는 말을 뒤에서 들을까 봐 걱정될 테지만, 친척 어르신들이 설마 그러진 않을 것이다.
싱크대에서 나만의 시간… 어머니 고생도 덜어드려
몇 년 전부터 '명절 대피소'라는 것이 유행이다. 주로 학원이나 스터디 카페에서 명절 연휴 기간에 운영하는 자습실을 뜻한다. 학생들은 공부한다고, 미혼 직장인들은 자기 계발한다고 핑계를 대며 이곳을 찾는다. 이유는 딱 하나, 명절 때 모인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서른이 가까워 오면서 나 또한 명절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힘든 처지가 됐다. 내 또래 친척들이 대부분 결혼을 앞두고 있는지라, 올 추석은 정말 어디론가 대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명절 대피소도 잠깐 고민했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수도권인지라 반나절이면 두 곳 모두 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할 게 많아서 바쁘다'는 핑계가 좀처럼 통하기 어렵다. 올 추석에는 대입 재수할 때 써먹었던 비법을 다시 시도해볼까 한다. 나서서 '설거지 담당'이 되는 것이다. 온종일 몰려드는 친척들 덕에 싱크대 앞에서 '나만의 고독'을 사수할 수 있다. "추석 때라도 엄마 고생 덜어 드리고 싶다"는 그럴듯한 포장을 보태면 결혼 관련 잔소리를 장전하던 친척 어른들도 "대견하다"며 다음 '타깃'을 찾는다. 어머니의 명절 증후군을 더는 건 덤이다.
추억이나 음식 얘기… 레퍼토리 하나 준비를
차례가 끝나고 친척들과 모여 앉아 밥 먹을 때면 항상 맨손으로 닭다리를 뜯어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마치 이틀은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먹는 것이 포인트. 이 모습을 본 삼촌이 "너는 어렸을 때부터 참 닭다리에 환장했지"라는 대사를 하면 매년 반복되는 명절 극장이 열린다. "저는 아직도 닭 모가지는 징그러워 못 먹어요"라고 연기하면 어르신 중 한 명이 "뭘 모르네! 이게 닭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라며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와 닭 모가지에 얽힌 역사 이야기까지 술술 나온다.
멀리 떨어져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척들과 딱히 공감되는 대화 주제가 있을 리 없다. 결국 침묵하고 있으면 "취업은? 결혼은? 집은?" 같은 막연한 질문이 던져진다. 하지만 그 질문이 상처 주려는 의도로 한 잔소리가 아니란 걸 잘 안다. 어른으로서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야겠다는 부담감에 쭈뼛쭈뼛하다 결국 생각해 낸 말일 테다. 생선이나 나물볶음이 더 먹고 싶지만 그래도 닭다리를 집어드는 이유다. 어른들의 부담감을 덜어주면서 듣기 싫은 질문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이번 명절엔 어렸을 적 추억이나 음식 얘기처럼 아무에게도 해 가지 않는 레퍼토리 하나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